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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역사, 명칭과 기후 특징을 알려드립니다

by 부자손선생 2023. 12. 5.

대관령 풍경

대관령의 역사와 명칭유래에 대해 알려드려요

대관령(大關嶺)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와 평창군을 잇는 높이 832 m의 고개로, 태백산맥의 주요 고개이다. 영서와 영동을 나누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대관령(大關嶺)은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대관령면에서 강릉시 성산면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높이 832m로, 영동고속도로가 대관령 터널을 가로질러 지나가며, 구 대관령휴게소가 있다. 예로부터 영동 지방에서 영서 지방, 더 나아가 한양으로 갈 때 오르내리던 고개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에서 강릉으로 가기 위해서는 인제-양양으로 돌아가는 한계령(1,004m), 제천-영월-정선-태백-삼척으로 돌아가는 두문동재(1,268m), 통리재(770m), 정선-동해/옥계로 이어지는 백복령(해발 750m)이 있는데 세 루트, 네 개의 고개가 전부 다 대관령보다 길이 험하다. 통리재나 백복령은 대관령보다는 높이가 낮지만 길이 훨씬 험해서 20세기가 되기 전에는 그냥 산을 넘는 게 길이었을 정도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이 식민통치와 수탈을 위해 조선사람 피땀을 짜내어 간신히 백복령과 통리재에 도로를 놓았다. 결국 대관령이 강릉 회랑 중 가장 난이도가 낮아 예로부터 원주와 강릉을 잇는 유일한 회랑 역할을 했다. 정선-동해를 잇는 백복령(750m)은 구배가 막장이다. 대관령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불명이다. 죽령이나 문경새재, 한계령, 진부령, 미시령, 육십령 등 대한민국의 주요 대형 고개의 이름 유래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거나, 이름 유래의 후보가 명확한 반면, 대관령만 이름의 유래가 완전 불명이다. 대관령이라는 이름은 삼국사기에 명주의 김순식이 왕건한테 저항하다 928년 왕건이 대관령을 넘어 김순식을 직접 찾아보고 귀부를 설득했다는 내용으로 처음 한국사에 등장한다. 이후 김순식은 대관령을 넘어서 왕건한테 투항하고 왕건의 호족 우대정책인 사성정책에 따라 "왕순식"이 되었다. 왕순식은 이후 지방의 맹주 자격을 이용해 지방 호족 출신으로는 당시 고려의 지방직 최고 벼슬인 대광 벼슬에[3] 오르는 등 왕건의 측근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나중에 김순식(왕순식)은 후삼국 최후의 전쟁인 일리천 전투에도 참가해 군공을 세웠다. 개성에서 내려간게 아니라 자신의 영지인 강원 영동(명주) 일대의 병력을 끌고 구미로 갔다. 특히 신사임당이 오랜 친정살이를 끝내고 마침내 시가(媤家)로 갈 때 대관령 고개에서 멀리 보이는 강릉을 보며 쓴 한시가 널리 알려져 있다. 태백산맥의 고개들 중 영동 최대도시인 강릉과 직접 맞닿은 고개인지라 지금까지도 여느 고개보다 수요가 많은 고개다. 심지어 예전 선조들이 다니던 산길은 현재 대관령 옛길로 불리며 등산코스로 이용되며, 지금 이 고개를 넘는 길(구 영동고속도로)은 나름 일제강점기 때부터 만들어진 길이다. 고개를 올라가는 도중에 준공 기념비가 하나 서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있는 고개 중에서는 독보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한계령과 미시령보다는 난이도가 현저히 낮지만 그래도 산맥을 넘는지라 꽤나 구불구불하여 40km/h을 넘지 못했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까지도 이 길은 영동고속도로인데 지방도 456호와 겸용구간으로 사용되며, 고속도로라 하기엔 너무나 빡센 드리프트 구간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넘는데 걸리는 시간만 약 30분이었으니... 과거에는 이 도로를 처음 타는 차들이 엔진 브레이크 없이 풋 브레이크만 써서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브레이크 과열로 갓길에 멈춰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또 겨울에는 타이어에 체인을 감지 않은 차량들은 이곳에서 사고가 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대관령마을휴게소에서 모두 돌려보냈다. 비위 약한 사람에게 멀미를 일으키는 곳으로, 특히 술 마신 다음 날 아침에 여기를 타면 그야말로 죽음이다.  그러다 2001년 영동고속도로 전 구간이 왕복 4차로 이상으로 넓어지고, 대관령 구간은 영서 시점에서 기존 도로로 부터 남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내려갔다 올라오고 북쪽으로 다시 반원을 그리며 내려가며 강릉 인근에 다다르는 형태의 S자형 코스에 터널을 여러 개 뚫는 형태로 선형이 개량되어[6] 대관령 소요시간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기존 대관령 고갯길은 456번 지방도로 격하되고 끝내 영동고속도로의 그 고단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7년 12월 22일에 경강선이 개통해, 강릉선 KTX가 길이 20 km 이상인 대관령터널을 통해 이 고개를 직선주파한다. 철도의 경우 자동차보다 경사에 민감하기 때문에 진부에서부터 바로 터널로 진입하여 강릉까지 계속 완만하게 내려가는 방식을 취한다. 대심도 지하철 또한 심도가 깊고 길이가 길어 사고 위험이 크기 때문에 터널 중간쯤에 대관령신호장이 건설되었다.

 

기후적 특징을 설명하자면

대관령 하면 바로 떠올리는 것이 바로 매우 추운 날씨이다.[9] 실제로 대관령은 대한민국(남한)에서 평균 기온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대관령의 연평균 기온은 매우 낮은데 이곳의 연평균 기온은 7.0℃[10]에 불과하고 최한월인 1월의 평균 기온은 -6.9℃로 평양보다는 많이 춥고 신의주, 모스크바보다 약간 추우며[11], 겨울 최저 기온은 -20℃는 기본이고 -30℃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물론 이는 대관령의 높은 해발고도에 기인한다. 한겨울 미디어에서 한파와 관련된 보도나 기상 정보가 나올 때 항시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추운 날씨로 인해 여름철에도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고랭지 채소 농사를 짓는 지역이다. 이를 서울하고 비교하면 서울의 연평균기온이 12.8도, 평균최고/최저기온이 각각 17.4도/8.9도 임을 감안할때, 대관령이 평균적으로 서울보다 6도나 낮은 기온분포를 보이고 있다는 말이다. 서울의 경우 온대기후지만 냉대기후에 가까운 지역인데도 이렇게 큰 편차가 난다. 철원보다도 2~4도씩이나 차이가 난다.이게 다 해발고도가 높은 탓이다 대관령의 월평균기온은 12월부터 3월까지 영하에 머무른다. 평균최저기온은 11월부터 3월까지 영하다. 강수량은 전국과 마찬가지로 여름에 집중된다. 1986년 1월 5일에는 대관령의 일 최고기온이 -19.1 °C로 관측되어 역대 가장 낮은 일 최고기온 1위를 기록한 적도 있었다.경상일보 2001년 1월 12일 기사[12] 겨울부터 봄까지는 습도가 낮아서 건조하다. 거기다 바람까지 거센 경우가 많아서 체감온도는 더 낮다. 또한 그래서, 대한민국 최초의 스키장을 이곳에 짓게 된 것이다. 봄 역시 대관령은 추운데 4월 5~10일경에 시작되어 전국에서 가장 늦다. 3월 평균기온은 영하이고 4월에도 7도, 5월 12도로 백령도보다도 꽤나 춥고 수도권 기준보다 1달정도 뒷서간다. 6월 역시 서울 10월보다 조금 높은 수준, 7월~8월도 19도대로 3계절일 듯 한 날씨이다. 그래도 대관령의 여름이 있는데 대서~입추, 보름 정도 밖에 안 되고 8월에 가을이 시작된다. 가을은 서울 등 수도권보다 한 달 정도 앞서가서 상당히 추운 편이며 11월 초에 겨울이 시작된다. 산간지방으로서 한여름에도 최고기온이 쉽사리 30 °C를 웃돌지 않았으나, 최근 지구온난화로 폭염이 잦아지면서 심심치 않게 30 °C를 넘는 날이 등장하고 있다. 영동지방의 2018년 폭염이 대관령에도 영향을 미쳐 7월에 9일 연속으로 30 °C를 넘었으며 특히 7월 22일 최고기온은 32.9 °C로 1973년 8월 12일에 기록된 32.7 ℃를 45년만에 돌파했다. 그나마 기상관측이래 아직까지 열대야와 폭염은 단 한차례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즉 백령도보다도 시원하다. 그러나 예상 외로 4~5월에 30°C를 넘은 적은 있었는데, 1983년 5월 29일에는 31.0°C 기록, 2005년 4월 30일에도 30.1°C 기록. 가장 최근을 보자면 2014년 5월 31일에 30.0°C 기록. 아이러니하게도 9~10월에는 30°C를 넘긴 적이 없었다. 또한 대관령의 기상학적인 여름은 서울이나 기타 대도시가 연중 100일을 넘어갈때 이 곳은 7월 말부터 8월 초중순까지 20여일 정도 밖에 안된다. 2010년 6월 1일 새벽에는 -1.7 ℃ 까지 떨어진 적도 있을 정도이며 초여름인 6월에 영하로 떨어질 정도면 얼마나 시원한 곳인지 알수있는 대목이다.[13] 한여름에는 아래에 있는 강릉과의 온도차가 10도 가까이 되기도 할 정도다. 이처럼 여름에도 선선한 기후로 화이트 어린이날을 넘어서 화이트 현충일까지도 보일 수도 있는 동네이다. 또한, 1976년 7월 5일에는 4.4 °C, 1977년 8월 27일에는 3.3 ℃까지 떨어졌었다. 남반구 날씨다 추가로 1981년 9월 14일에 -0.6℃를 기록, 남한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빠르게 영하로 떨어졌다. 그리고 고지대다 보니 바람도 많이 불어 풍력 발전단지가 이곳에 건설되어 있다. 동해가 가까이 있고, 산간 지방인 특성상 강수량도 많다. 일 강수량 최다 1위가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가 내습하였을 때 기록한 712.5 mm로, 이는 같은 날 강릉[14]에 이은 역대 전국 2위이다.

 

- 나무위키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