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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의 역사와 주요 볼거리 및 찾아가는 길을 살펴볼께요

by 부자손선생 2023. 11. 11.

대웅전 올라가는 다리( 연화교와 칠보교, 청운교와 백운교)

불국사의 역사를 살펴봅시다

불국사(佛國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호국사찰이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석굴암과 함께 지정되었다. 불국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이다. 대표적인 소속 말사는 분황사, 기림사, 골굴사, 불영사 등이 있고, 대표적인 암자로는 석굴암 등이 있다. 2023년 5월 4일부터 무료입장이 가능해졌다.[1] 불국사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같은 곳에 있다. 정확한 건축 연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일단 《불국사고금창기》라는 기록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 15년(528년)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연제부인)이 새 사찰을 짓기를 소원하여 불국사를 처음 지었다. 이후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부인이 크게 개창했는데, 이때 아미타여래상과 비로자나불을 조성해 봉안했다. 문무왕 10년(670년)에는 무설전을 건설해 화엄경을 강의했고, 경덕왕 10년(751년)에 그 유명한 김대성이 크게 중수하면서 청운교, 백운교, 석가탑, 다보탑 등을 건설했다는 것이 '불국사고금창기'의 기록이다. 출판사 지학사에서 만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연표에도 751년이 불국사와 석굴암이 중창되기 시작한 해라고 서술했다. 하지만 《삼국유사》에는 앞부분이 빠지고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했다고 나온다.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모시기 위해 석불사(석굴암)을 만들었고 현생의 부모를 모시기 위해 불국사를 창건했다는 것. 이 일화가 유명해서 김대성이 지은 줄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의 기록이 더 정확할 거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불국사 자체가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기에 김대성 혼자서 그런 엄청난 건설을 했다기보다는[5] 법흥왕 때부터 신라 국가차원에서 개증축을 해오다가 훗날의 모습의 바탕이 되는 결정적인 중수를 김대성이 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아무래도 불국사고금창기의 기록이 더 세세하기도 하고, 삼국유사가 설화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러하다. 참고로 삼국사기엔 김대성이라는 이름은 없고 경덕왕 시절 중시를 지낸 김대정(金大正)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기백 교수를 비롯한 여러 역사학자들은 정황상 동일인물로 추정한다. 어쨌든 중수와 관련한 유명한 설화로 삼국유사에도 실린 김대성 설화가 유명하다. 김대성이 재상급인 중시로 알려진 것으로 보아 고위귀족이 심혈을 기울여 중수하면서 규모가 상당히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김대성이 중수한 연대는 751년에서 765년 사이로 추정된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 중수하였고 여러 부분에서 통일신라의 정형화된 양식이 보이기 때문에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는다. 이때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다보탑 등이 세워졌으며 2탑 1금당의 가람 (절의 배치된 모양) 형식이 완성되었다. 불국사고금창기의 기록에 따르면, 이 때의 불국사는 건물만 80종·2천여 칸으로, 오늘날 불국사의 8배 규모의 대사찰이었다. 이후 역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기 어려우나, 임진왜란 직전인 16세기 말 기록인 동경유록, 간재집에 의하면 여전히 신라 때의 석탑, 불상, 그림들이 남아 있었고 천 칸의 큰 규모였다고 한다. 동경유록에서는 신라왕이 백성의 힘을 이런 쓸모없는 곳에 쏟아부었으니 애석하다고 기록하였다. 숭유억불에 따라 불교를 천시하던 조선시대 유학자의 기록임을 감안할 필요는 있지만, 왜란 전 불국사의 규모가 상당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면서 가토 기요마사의 방화로 한 번 크게 불타 사라졌다. 지금도 대웅전의 장대석 등을 살펴보면 화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불국사 가이드 투어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방화는 처음부터 절을 파괴할 목적으로 방화한 것이 아니라, 당시 경주 일대를 점령한 일본군 병사들이 굉장한 절이 있다고 구경 왔다가 의병이나 승병을 무장시키기 위해 절에 보관 중이던 무기를 잔뜩 발견하고 "아름다운 꽃일수록 맹독을 감추고 있다" 라는 이유로 본대에 연락해서 공격한 것이라고 한다. 얄궂게도 가토 기요마사는 불교 신자였다. 다만 가토 기요마사는 정확하게는 가마쿠라 시대에 승려 니치렌이 창시한 법화경만을 유일무이한 경전으로 떠받들고 다른 경전은 모두 무시하고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련정종의 신자였다. 일련종은 법화경을 제외한 다른 경전을 사용하는 일본의 기성 불교 종단을 모조리 배척하는 극단적인 곳이었다. 자국 불교에 대해서도 이 모양인데 법화경 외의 다른 경전도 인정하던 한국 불교에도 자비가 없었다. 게다가 전국시대 당시 일본에서는 워낙 조선 승병들에게 피해를 많이 받았던지라 이미 승병에 학을 뗀 상태였는데 승병을 무장시킬 무기도 발견됐겠다, 그런 명분으로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 조선 영조 26년(1750년)에 불국사 극락전이 다시 세워지고 41년(1765년)에 불국사 대웅전이 다시 세워졌다. 1779년 경주 지방 유림이 지원하여 중창하는 등 (기사 링크) 재건하는 노력이 있었으나 결국 조선 말기를 거치면서 사실상 폐허가 되었으며, 당시 다 쓰러져가는 불국사를 조선 말기에 촬영한 사진이 남아 있다. 

주요 볼거리를 소개해 볼께요

석가탑과 다보탑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일명, 법화경)의 「견보탑품(見寶塔品)」내용을 보여주는 탑이다. 『법화경』에서 "이를 설법하는 석가모니를 찬양하기 위해 다보여래가 보탑의 형상으로 솟아나 공중에 머물며 찬양한 후, 탑내의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나란히 앉았다."는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무진의보살이 관세음보살에게 영락을 보시하자, 관세음보살이 이를 반으로 나눈다. 그리고 반은 석가모니부처에게, 나머지 반은 다보부처님 탑에 공양을 하는 장면 또한 나타낸 것이다. 석가모니부처가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설하시기 전에 다보부처는 탑만 남기고 자리를 뜨셨기 때문에, 다보탑에 공양한 것이 맞다. 석가탑은 석가모니여래를 상징한다. 『불국사 사적기』에는 석가탑이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說法塔)으로 적혀있다. 또한 석가탑의 또 다른 이름은 무영탑으로 그림자가 없는 탑이라는 뜻이다. 아사달과 아사녀 그리고 영지(그림자 호수)에 얽힌 전설이 반영된 별명이다. 다보탑은 다보여래를 상징한다. 『불국사 사적기』에는 다보탑이 다보여래상주증명탑(多寶如來常住證明塔)으로 적혀있다. 사진에서 앞에 다리가 연화교와 칠보교, 뒤에 다리가 청운교와 백운교이며 남북국 시대 신라의 건축물로 대한민국의 국보 제23호이다. 계단인데, 다리라는 교(橋)가 붙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래 불국사는 토함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주위를 호수로 만들어 놓아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했다. 그래서 배를 백운교에 매어놓고, 절로 올라갔었다. 현재는 물을 모으지 않고 바로 흘려보내므로 흔적만 남아있다. 불국사 왼쪽 주변을 둘러보면 땅을 깊게 파서 콘크리트로 마감한 크고 깊은 배수로를 볼 수 있다.

불국사를 찾아가는 길을 간단히 알려드려요

인근 고속도로로는 동해고속도로 남경주IC가 불국사에서 5km 떨어진 곳에 있다. 하지만 고속도로 구조상 이곳을 통해 불국사를 찾는 경우는 부산이나 울산같이 경주보다 남쪽에서 오는 경우이며, 서울같이 경주보다 북쪽에서 온다면 경주 시내를 통과해서 와야 한다. 불국사 공영주차장에 주차시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정문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으니 사용가능하며 ,석굴암을 먼저 관광하고 내려오는 길 우측에 불국사 정문과 주차장이 있으니 바로 관람하면 편하다. 동해선에 이 역의 이름을 딴 불국사역이 있었으나 태화강역~경주역 구간의 복선 전철화 및 선로 이설로 2021년 12월 28일 폐지되어 2022년부터는 철도를 이용해서 오려면 신경주역에 내려서 시내버스를 타고 와야 한다. 불국사에서 경주 시내, 신경주역까지 택시를 타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이유는 불국사가 택시 복합할증 적용 구역에 위치해 있어 55%의 할증 요금을 받기 때문이다. 시외버스는 구정로타리에서 이용할 수 있는데, 역시 불국사역 건너 혹은 앞에 있어 한참을 가야 한다. 이곳에서 울산, 경주, 효문, 울산공항, 호계, 모화, 입실, 포항, 영천, 경북도청, 하양, 대구대행을 이용할 수 있다. 과거에는 울산~포항 노선이 불국사에서 10회 이상 다녔으나, 동해고속도로 개통 이후 2회로 줄었다가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1회로 줄은 상태다. 이 2회는 야간에만 다닌다. 2019년 7월 18일에 울산-대구대 노선이 2회에 한하여 울산-경주를 고속도로 대신 7번 국도로 다니도록 변경되면서 주간 운행이 부활했지만 2020년에 코로나19로 운행이 중지되었다. 그 이후 2021년 10월 1일에 울산-신도청 노선 중 1회가 입실, 불국사를 들리도록 하면서 주간운행이 부활하였다. 과거에는 청주행도 다녔다가 폐지되었다.

 

- 위키백과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