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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월미도 역사와 관광정보 및 대중교통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by 부자손선생 2023. 11. 29.

월미도 가로등(야경)

월미도의 역사를 살펴볼께요

월미도(月尾島)는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에 속해 있는 섬이었다. 현재는 섬과 육지 사이가 메워졌다. 섬의 생김새가 반달 꼬리 모양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가장 높은 곳은 월미산으로, 해발 고도는 108m에 불과하다. 월미도 밑에는 그보다 작은 소월미도가 있다. 인천시민들과 그 주변 도시 주민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월미도와 관련한 이름은 1655년 효종(조선) 때 기록인 <비변사등록>에서 확인된다. 당시에는 魚乙未島(어을미도)라고 불렸다. 그 뒤 숙종 때부터 月尾島(월미도)로 쓰여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1655년에 어을미도에 행궁을 지었는데 공사를 해야 해서 돈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공식적으로 처음 나온 것은 1708년에 상소문 중 적이 와서 강화도로 가는 길이 막혔을 때를 대비해 월미도까지 행궁을 만들고 피란로를 만들자고 하였다. 그리고 월미도와 인천은 해상군사요충지라는 이유를 들었다. 여기서 조선 중기부터 이미 월미도가 군사 요충지로 알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때쯤부터 어을미도에서 월미도라고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개화기 때에는 러시아 해군의 석탄 창고와 일본 해군기지가 이곳에 들어서면서 열강들이 이곳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별였다. 대표적인 예로 병인양요 때 이 섬을 점령한 프랑스 해군은 지휘관 로즈 제독의 이름을 따 로즈 섬(Roze Island)이라고 했다. 1900년 월미도의 개간권을 허가받은 송정섭#은 일본인 요시가와에게 개간권을 팔아 넘겼고, 요시가와는 월미도 주민을 내쫓았다. 조선 정부는 송정섭을 체포하고 매각 대금을 일본 공사관에 전달하고 개간권의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요시가와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1904년 8월에 일본군이 작전상 필요하다며 포대를 쌓았으며, 1905년 5월에는 민가 80여 호를 철거하고 섬 전체를 점거하였다. 1923년 1km의 제방을 쌓아 육지와 연결한 후 유원지로 개발되었는데, 주로 일본인들을 위한 조탕, 별장, 요정, 해수풀장 등이 들어섰다. 북한에서는 월미도를 '영웅의 섬'이라고 부르며 '월미도 정신'이라는 구호까지 만들어 월미도를 각별하게 생각하는데 북한정권의 선동자료에 의하면 6.25 당시 전황이 불리하여 후퇴를 할 상황에 놓이자 최고사령부는 시간을 벌기 위해 요충지인 월미도에 사수를 명령한다. 월미도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인민군 해군 해안포중대는 최고사령부의 지시를 목숨처럼 여기며 3일동안 결사항전을 하였고 전원 사망으로 당에 대한 충성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벌어준 3일 덕에 북한군은 전력을 재정비하여 전승에 기여했다..는 이야기인데, 실상은 UN군은 단 수십분만에 월미도를 접수했고 북한 해군육전대는 120명 전사에 190명 투항의 피해를 입은 반면, 연합군은 1명 전사 22명 부상에 그쳤을 정도로 연합군이 일방적으로 줘팬 전투였다. 영웅적 설화는 당연히 거짓으로, 당시 자료 화면을 보면 알몸차림으로 손을 들고 제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하는 북한군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 월미도 정신에 관한 일화는 북한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큼 국가적으로 내세우는 프로파간다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통째로 거짓말이었다는것을 믿지 못하는 탈북자들이 많다고 한다. 해방 후 이 섬에는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가 들어서게 되었고 1999년까지 사령부가 월미도에 있었다. 이 중 월미산 일대 해군 주둔지는 평택시로 이전하며 인천시에 부지를 반환했고 인천시는 부대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는데 이 공원이 현재의 월미공원이다. 공원 내 2함대 주둔지였음을 뜻하는 기념구조물이 있다. 휴전 이후에 1960년대까지도 월미도는 육지와 제방으로만 이어진 섬이었으나 1970년대 들어서 제방 주변의 바다를 땅으로 메우고 이 자리에 공장과 항만시설을 지으면서 육지와 연결된 섬이 됐다. 1980년대 들어서 월미도 해안 주변에 놀이동산이 들어서면서 수도권의 대표적인 해양 관광지로 인기를 끌게 된다. 특히 1990년대 들어서 월미도 놀이동산의 바이킹과 디스코 팡팡이 주목을 받으면서 월미도의 인기가 수직상승하기도 했다.

관광지로서 월미도를 살펴볼께요

월미도 내에 위치한 놀이동산들이 유명하다. 마이랜드, 월미테마파크, 비취랜드, 월미랜드, 바이킹 놀이동산, 슬링샷[6]이 있는데 각 놀이동산이 보유하고 있는 놀이시설도 비슷하고 서로 거리도 가까워서 사람들이 다른 운영사인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시설 중에는 바이킹, 타가다 디스코(디스코 팡팡)와 월미테마파크에 위치해있는 문 아이가 유명하다. 하지만 마이랜드, 월미테마파크, 비취랜드의 경우 안전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어 안전문제에 대해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으므로 타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히 생각해 볼 것. 사고가 났었던 놀이기구는 마이랜드의 바이킹, 비취랜드의 썬드롭, 월미테마파크의 회전그네와 크레이지 크라운, 슈퍼점프이다. 놀이동산 거리 바로 옆에 갯벌이 있다. 밀물 때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볼 수 있지만 썰물 때에는 갯벌이 훤히 드러난다. 하지만 갯벌에는 절대 들어가면 안된다. 갯벌의 폭이 넓지 않아 금방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고 절벽이 가로막고 있어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힘들어 굉장히 위험하다. 월미도 초입부에는 월미산을 중심으로 조성된 총 면적은 588,099.3㎡의 월미공원이 있다. 주민들에게 녹음이 있는 휴식공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설을 운영하고 체험행사를 진행하여 공원을 이용하는 이용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공원 내 주요시설로는 월미도 일대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월미전망대와 한국의 대표적인 정원들을 재현해 놓은 한국전통정원,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월미문화관 등이 있다. 월미바다열차의 월미공원역이 월미공원의 정문 바로 앞에 위치한다. 월미공원 안내소에서 월미전망대가 있는 정상광장까지 전기셔틀자동차인 물범카를 운행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무한다. 유람선을 운행 중이다. 월미도 공원 바로 옆바다가 뱃길이라서 가끔 화물선도 지나가는 걸 볼 수 있다. 월미도 선착장 옆에는 인천상륙작전상륙지점 중 하나인 그린 비치(녹색해안)가 있다. 월미도 안에는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해외로 이민을 다룬, 인천광역시에서 만든 역사박물관으로서 지명도에 비해 전시내용이 매우 충실한 편이다. 예를 들면 한국 이민사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파라과이 교민역사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전시되어있다. 그밖에 쿠바, 멕시코 이민사등 전시내용이 꽤나 자세한편. 중고등학교에서 현장학습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 경우도 많다.

가시는길(대중교통) 정보도 알려드려요

수도권 사람들이 전철1호선을 타고 월미도로 여행을 갈경우에는 1호선 동인천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월미도로 가는것을 추천한다. 지리적으로는 인천역이 월미도와 가장 가깝지만 급행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걸어서 가기에는 다소 멀어 어차피 또 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동인천역에 내려서 2번, 10번, 45번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로 15분 정도 거리의 월미도로 가면 인천광역시와 월미부둣가, 항구의 멋진 모습을 보면서 갈수 있어 여행의 만족도가 높다. 그 외에 월미바다열차가 인천역에서 월미도로 들어가지만 코로나사태로 인해 잠시 운행이 중단되었다가, 2021년 11월에 월미바다열차 운행이 재개되어 인천역에서 월미도까지 월미바다열차를 타고 갈 수 있게 됐다. 월미도선착장에서 영종도 구읍뱃터까지 가는 선박편이 60분 간격으로 운행중이다. 매일 1시간에 1척 운행하며, 운임은 성인 기준 3500원이고 차량의 경우 일반 승용차 1대당 7500원이다. 제3연륙교가 개통하기 전까지는 도보나 이륜차, 자전거로 영종도를 오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무위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