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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을 소개하고 건축구조와 관람정보를 소개합니다.

by 부자손선생 2023. 11. 13.

창덕궁 돈화문

 

창덕궁을 소개하자면요

창덕궁(昌德宮)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 시대 궁궐로 동쪽으로 창경궁과 맞닿아 있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서 조선 시대에는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東闕)이라 불렀다. 창덕궁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고궁이며, 특히 창덕궁 후원은 한국의 유일한 궁궐후원이라는 점과 한국의 정원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1997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은 고려 시대 궁궐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개성의 송악산의 만월대처럼 자연 지형에 맞추어 산자락에 지어졌다. 보통 궁궐은 인위적으로 존엄성과 권위를 드러내도록 건축되지만 창덕궁은 이러한 얽매임 없이 북악산의 줄기인 응봉의 산자락 생긴 모양에 맞추어 적절하게 궁궐의 기능을 배치하였다.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보다 오히려 더 많이 쓰인 궁궐이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일본군에 의해 소실된 이후 다시 지어졌고, 1868년 경복궁이 다시 지어질 때까지 경복궁의 역할을 대체하여 임금이 거처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정궁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부분이 의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그린 《동궐도》와 1900년에 그려진 《동궐도형》을 참조하여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주요 건축물 및 구조를 살펴볼께요

현재 창덕궁은 크게 인정전과 선정전을 중심으로 한 치조(治朝) 영역, 희정당과 대조전을 중심으로 한 침전 영역, 동쪽의 낙선재 영역, 그리고 북쪽 언덕 너머 후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창덕궁은 북쪽으로 산을 등지고 14만 5천여 평의 산자락에 자리 잡았으며, 북쪽 응봉의 지형에 따라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과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등 각 건물이 일정한 체계 없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어 평지에 세운 경복궁과 대비된다. 그러나 언뜻 보아 무질서해 보이는 창덕궁의 건물 배치는 주변 구릉의 높낮이 뿐 아니라 그 곡선과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으며, 풍수 사상에 따라 뒤에는 북악산 매봉이 있고 앞으로는 금천이 흘러 배산임수를 이루고 있다. 또한 궁궐의 앞쪽에는 공적인 공간을 두고 뒤쪽에는 사적인 공간을 두는 전조후침(前朝後寢)의 원칙에 따라 궁궐 앞에는 공적인 공간으로 궁궐의 으뜸 건물인 인정전, 임금의 집무실인 선정전, 임금을 보좌하는 여러 관청인 궐내각사(闕內各司)가 자리 잡고 있고, 뒷부분에는 임금과 왕실의 사적인 공간인 임금과 왕비의 처소가 있다. 선정전, 희정당, 낙선재 등 임금의 거처는 외부에서 침입하기 어렵도록 여러 겹의 건물과 마당으로 사방을 에워싼 소위 '구중궁궐'(九重宮闕)의 모습이다. 또 중희당, 연영합 등 세자의 거처는 '동궁(東宮)', 수강재와 같은 대비의 거처는 '동조'(東朝)라 하여 옛 법도에 따라 이들의 처소는 궁궐 동쪽에 두었다. 또 유교 이념에 따라 호사스럽기보다는 검소하고 질박한 궁궐 건축이 돋보인다. 돈화문 : 돈화문(敦化門)은 창덕궁의 정문이다. 조선 태종 12년(1412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지금의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선조 40년(1607년)에 재건하여 광해군 원년에 완공한 것이다. 이때의 모습이 현재까지 남아있어,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으로 유일하게 정면이 5칸 규모로 되어 있다. 1963년에 대한민국의 보물 제383호로 지정되었다. 돈화문은 궁궐의 정문이나 창덕궁 서남쪽 모서리에 있는데, 그 이유는 산자락에 자리잡은 창덕궁의 지리적 특수성 때문이다. 궁궐 정면에는 북악의 매봉이 연결되어 있고, 이곳에는 조선의 가장 신성한 공간인 종묘가 있어 창덕궁의 정문이 들어설 수 없었다. 또 정궁인 경복궁과 위치상 가까우며, 예부터 대문에서 내당이 직접 보이지 않도록 배치하는 기법과도 관련이 있다. 돈화문은 화려하게 단청된 이층집으로, 남쪽으로 길게 뻗은 두 단의 월대(月臺, 궁궐의 주요 건물 앞에 돌로 쌓은 널찍한 대)위에 서 있다. 문 좌우로 궁궐 문을 지키는 수문장청(守門將廳)을 두었다. 돈화문 월대 앞에는 임금이 가마를 탈 때 딛고 올랐던 노둣돌이 두 개 놓여있고, 가마를 올려 놓는 목마 두 개가 버티고 있었다. 인정전(仁政殿) : 창덕궁의 정전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 전각이며 건립 당시에는 정면 3칸의 작은 전각이었다. 용마루에는 다섯 개의 이화문장이 새겨져 있다. 1405년(태종 5)에 건립되어 세종 원년에 고쳐 지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선조 때 복구공사가 시작해 광해군 원년에 재건되어 황폐화된 경복궁의 근정전을 대신해 이곳에서 국가적인 대례를 행하는 장소가 되었다. 대한제국 시기 순종황제가 즉위하면서 1908년(융희 2년) 창호를 황색으로 칠하고 내부엔 노란색 천으로 장식한 천과 커튼 등이 설치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당시 앞마당의 박석이 걷어지고 화초가 심어지는 등 대대적으로 훼손되었다. 해방 후 1985년 국보 225호로 지정되었고, 1994년 앞의 잔디를 걷어내고 박석을 다시 설치했다. 인정전 주변의 외행각은 1991년 이후에 복원했다. 선정전(宣政殿) : 창덕궁의 편전으로 정면 3칸에 측면 3칸인 단층 양식의 다포계 팔각지붕을 한 전각으로 궁궐의 전각중 유일하게 청기와를 하고 있다. (징광루도 청기와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1917년 소실) 건립 당시 조계청이었으나, 1461년(세조 7)에 선정전으로 개명되었다. 후에 임진왜란으로 소실되다가 1647년(인조 25), 광해군 때 청기와를 얹어 호화롭게 지은 인경궁의 편전인 광정전을 헐어 재건되었다.[2] 그래서 지금도 청기와를 얹고 있는 것. 이후 편전의 기능이 희정당과 중희당으로 넘어가자 빈전, 혼전 등 왕실장례기능을 수행하는 곳으로 변모되었고 복도각이 증설되었다. 근대화 시기에 인정전처럼 내부에 전기시설이 들어섰고 일제강점기에 복도각이 헐어지는 등의 훼손을 겪다가 해방 뒤인 1985년에 보물 제814호에 지정되었고 1997년에 복도각이 복원되었다. 부용정(芙蓉亭) : 
부용지의 정자로 정면 5칸, 측면 4칸, 배면 3칸의 十자형 전각이다. 배면 한 칸은 연못에 높은 석주(石柱)를 세우고 수중누각(水中樓閣)이 되게 하여 수상과 지상의 조화를 추구했다. 1707년(숙종 33)에 택수재라는 명칭의 정자였으나 1792년(정조 16)에 개축하면서 명칭 또한 지금의 부용정으로 고쳤으며 1795년(정조 19)에 있던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종친들과 신하들을 초청해 낚시와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낙선재(樂善齋) : 창덕궁 낙선재 권역을 대표하는 전각으로 사랑채의 역할을 한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기와지붕이며 1846년(헌종 12)에 단청없는 사대부가 양식으로 세워졌다. 본래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가 거주할 전각을 만들면서 헌종 본인도 같이 기거할 사랑채격으로 함께 지어진 곳으로 헌종이 추사 김정희를 접견하는 장소로 자주 사용하는 등, 헌종의 문예생활이 주로 이곳에서 이뤄졌다. 해방 후 대한제국 황실 가족이 거주한 장소로 유명한데, 1963년 11월 22일 일본에서 돌아온 영친왕이 1970년 5월 1일, 이방자 여사가 1989년 4월 30일에 숨을 거둔 곳이기도 하다. 순종 사후 낙선재에 머물던 순정효황후를 위해 1930년대에 낙선재 서행랑을 허물고 신관을 신축했으며, 이방자 사후 1990년대에 신관을 철거하고 원래의 서행랑을 복원했다.

관람정보도 알려드릴께요

궁궐관람제도가 개편됨에 따라 2010년 5월 1일부로 전각구역은 자유관람이며, 후원은 별도 요금으로 시간이 제한된 관람이 실시되고 있다. 종묘 및 4대 궁궐(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창덕궁)를 모두 관람할 수 있는 통합관람권으로도 입장이 가능하다. 또한, 함양문을 통해 창경궁과 연계관람이 가능하다. 달빛기행 : 창덕궁 달빛기행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창덕궁에서 매월 음력 보름을 전후해 은은한 달빛 속의 정취와 함께 진행된다. 아름다운 야간조명과 함께 국가의 중심공간으로서 위엄과 다채롭고 소소한 일상공간으로서의 모습을 함께 느끼며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청사초롱으로 길을 밝히고 전문해설사의 안내로 창덕궁의 밤풍경을 거닐며 후원을 포함하여 각 전각을 돌아본다. 전각과 후원을 돌아본 후 연경당에서는 차 한 잔의 여유와 다과를 즐기며 전통공연을 관람하는 시간을 가지며 만들어낸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보아오던 창덕궁의 고즈넉한 야경과 그때와 변함없는 보름달의 아름다움이 되살아나는 시간이 된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매년 봄 가을에 열리고 있다. 후원관람을 위해서는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후원 특별 관람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기본이다. 홈페이지에서 관람일 6일 전 오전 10시 정각부터 시간당 50명씩 예약이 가능한데 친절하게도 예매 사이트에 서버 시계가 있다. 시간당 100명의 관람이 가능한데 나머지 50명은 현장 판매 분량이다. 만약 후원관람권 현장구매를 원한다면 최소한 전각관람권은 미리 사놓길 추천한다. 주말에 아침 9시 30분만 되어도 돈화문쪽 입구엔 줄이 길게 늘어서 있기에 후원입구까지 가는데도 시간이 걸리게 된다. 특히 단풍철인 11월은 후원 관람의 최고 성수기에 해당해서 인터넷으로 예매하려면 광클은 필수다. 창덕궁 일대는 서울에서 가장 늦게까지 단풍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보통 11월 초중순이 북한산이나 관악산의 단풍 절정기라면 창덕궁의 단풍 절정기는 이보다 1~2주 정도 늦은 11월 중하순이다. 

 

- 위키백과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