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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사찰 양산 통도사를 파헤쳐 보자

by 부자손선생 2024. 1. 13.

양산 통도사

통도사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자

신라 선덕여왕 재위 중인 646년(선덕여왕 14)에 자장 율사(慈藏 律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건 당시에 대웅전·적멸궁(寂滅宮)·법당 등의 건물이 있었고, 금강계단에 진짜 부처인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으므로 대웅전에는 부처의 모형인 불상을 만들지 않았다. 절 이름은 영취산의 기운이 서역국 오인도(西域國五印度)의 땅과 통한다고 하여 통도사라 불렀다고 한다. 자장은 이 절에서 금강계단을 쌓고 보름마다 불법을 설파하여 계율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1년(선조 34)에 유정 대사(惟政 大師)가 중건, 1603년(선조 36)에 송운 대사(松雲 大師)가 재건(증축)하고 다시 1641년(인조 18)에 우운(友雲)이라는 선사(禪師)가 중건하였다.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다. 한국의 삼보사찰 중 하나이자, 팔대총림 중 하나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안치된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어 불보(佛寶)사찰로도 불린다. 삼보사찰 중 나머지 두 군데는 해인사와 송광사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18년 6월 30일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등이다. 특이한 것은 사찰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조선시대부터 보존된 전각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적으로 지정되지 않았고, 경상남도 기념물로만 지정되어 있을 뿐이다. 계율종 중심 사찰이고 자장이 창건하였다. 통도사가 있는 곳은 영축산(靈鷲山)이라는 산으로, 석가모니가 설법하던 인도 마가다국 왕사성에 있는 영축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그로부터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에 따르면 지금의 통도사 자리에는 큰 연못이 있었는데, 그곳에 아홉 마리의 독룡이 살면서 백성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한다. 삼국시대인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에 자장율사가 연못에 있는 독룡들을 교화하여 날아가게 했고, 연못을 메운 후 그 위에 통도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자장율사가 독룡을 물리치고 통도사를 창건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중국 우타이산(五臺山)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이때 문수보살을 만났다고 한다. 문수보살은 자장율사에게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1백과, 불두골(佛頭骨), 손가락뼈(指節), 염주, 경전 등을 주면서 "이것들은 내 스승 석가여래께서 친히 입으셨던 가사이고, 또 이 사리들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이며, 이 뼈는 석가모니의 머리와 손가락 뼈이다. 그대는 말세(末世)에 계율을 지키는 사문(沙門)이므로 내가 이것을 그대에게 주노라. 그대의 나라 남쪽 축서산(鷲栖山: 영축산의 옛 이름) 기슭에 독룡(毒龍)이 거처하는 신지(神池)가 있는데, 거기에 사는 용들이 독해(毒害)를 품어서 비바람을 일으켜 곡식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니 그대가 그 용이 사는 연못에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이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삼재(三災 : 물, 바람, 불의 재앙)를 면하게 되어 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천룡(天龍)이 그곳을 옹호하게 되리라." 라고 말했다. 자장율사는 그것을 들고 신라로 귀국하였고, 연못에 와서 독룡 아홉 마리에게 설법을 하니, 독룡 아홉 마리는 곧 교화되었다. 그 중 다섯 마리는 오룡동(五龍洞)으로, 세 마리는 삼곡동(三洞谷)으로 날아갔는데, 오직 한 마리만이 남아서 터를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하였으므로 자장율사는 그 용의 청을 들어 통도사에 남도록 했다고 한다. 독룡 아홉 마리가 살던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세우고 그 안에 중국에서 들고 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안치하였다. 그러나 연못 한 귀퉁이는 메우지 않고 남겨 두었는데, 이곳이 지금의 구룡지로, 마지막 한 마리 남은 용이 있는 곳이라 한다. 불과 네댓 평의 넓이에 지나지 않으며, 깊이 또한 한 길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타원형의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전혀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통도사에서는 이 용을 모시는 가람각을 세워 두었다. 통도사라는 절의 이름은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일체중생을 제도(濟道)한다는 뜻에서 통도(通度)라 하였다. 신라시대에는 모든 승려들이 통도사 금강계단에 와서 계를 받았고,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이곳의 금강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사라는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다는 것은 곧 부처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통도사는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다. 현대에도 통도사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직지사 등과 함께 조계종 승려들이 계를 받는 곳 중 하나이다. 『삼국유사』 「자장정률(慈藏定律)」의 기록에 의하면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해서 불법을 배우고 귀국한 뒤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 되었고, 선덕여왕은 자장율사에게 왕명을 내려 통도사를 창건하게 했다고 한다. 자장율사는 통도사를 창건하며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佛舍利), 금란가사, 대장경 400여 함을 봉안하였고,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아 승려의 규범을 관장, 법식(法式)을 가르치는 등 불법을 널리 전하였다고 한다. 통도사는 이후 계율의 근본도량이 되었고, 신라의 승단(僧團)을 체계화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창건 당시의 가람은 자장율사가 쌓은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몇 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외형적인 통도사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가람 배치는 영축산에서 발원한 '서출동류'하는 하천의 북쪽면을 따라 서에서 동으로 좌향하고 있는데, 진입공간에서 일주문-천왕문-불이문-대웅전으로 이어지는 장축(長軸)과 만세루-3층석탑-영산전으로 이어지는 하로전, 관음전-용화전-대광명전으로 연결되는 중로전 및 중정-대웅전-금강계단 축의 상로전으로 상, 중, 하의 전각의 위계를 가진 부축(副軸)을 아주 낮은 높이차로 구분한 고대시대 이후에 사찰배치로 유래가 없는 '삼원식가람배치'형식을 취하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 오른편에 극락전·약사전(藥師殿)·영산전(靈山殿)이 있고, 좌측으로 가람각(伽藍閣), 범종각, 만세루(晩歲樓)가 있고, 불이문을 지나 우측으로 관음전, 용화전(龍華殿)·장경각·대광명전(大光明殿) 황화각, 영각 등이 있고, 좌측으로는 원통방(圓通房)·감로당(甘露堂)·명부전(冥府殿)이 있고 정면으로는 대웅전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 너머로 응진전(應眞殿), 삼성각, 산신각, 구룡지가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은 남면으로 배치된 정면 3칸, 측면 5칸의 단층 건물이며, 지붕의 종마루가 우물 정(井)자형을 이룬 독특한 양식의 건물이다. 대웅전의 내부에는 불상이 없는 단순히 배전의 성격만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거대하고 화려한 금강계단이 근접하여 배치되는 중축선상의 배치로 조성되어 있는데, '지성소와 배전'이라는 공간구성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도의 '차이티아와 배례공간'이라는 인도의 고대석굴사원에서부터 시작된 불사건축의 기본형식과 다르지 않는데 통도사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과 배전인 대웅전으로 나위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특히 이 절에 보관된 보물334호 동제은입사향로(銅製銀入絲香爐)는 고려시대의 우수한 예술 작품이며 이 밖에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와 신라 시대의 유품인 3층 석탑·사립탑·석상·석등 등은 진귀한 것이다. 통도사에는 65동의 건물과 13개의 말사(末寺)를 가지고 있어 해인사·송광사와 함께 대한민국 3보사찰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소개할만한 문화재

통도사: 2018년 1월 4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289호로 지정되었다.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4년(646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영축산은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쪽에 위치한 산 이름이다. 이 산의 모양이 불법을 직접 설하신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 하여 통도사라 한다. 또한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사라 한다. 대웅전은 본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지금의 건물(대웅전)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23년(1645)에 다시 지은 것이다. 아울러 불가에서 금강계단은 승려가 되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수계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으며, 지금 있는 금강계단은 고려·조선 시대를 거쳐 여러 차례 수리한 것으로 우리나라 전통적인 금강계단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처럼 통도사는 국보로 지정된 조선 중기의 대표적 건축인 대웅전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담고 있는 금강계단을 비롯하여 탑․석등 등 무수한 문화재들이 산재하고 있는 곳으로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한다.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梁山 通度寺 大雄殿 및 金剛戒壇)은 국보 제290호로, 통도사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의 법당이다. 통도사의 가람건축들은 대부분 동서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나 대웅전은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뒤쪽에는 금강계단이 있다. 계단의 사리탑 속에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봉안되어 대웅전 안에는 불상을 안치하지 않고 큰 불단만을 마련하였다.1961년 7월 보수공사 때 발견된 동쪽 합각(合閣) 머리의 서까래 세 개에 쓰여 있는 순치이년갑신오월(順治二年甲申五月)의 묵서명(墨書銘)으로 미루어 보아 이 건물이 1645년(인조 23)에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통도사 봉발탑: 통도사 봉발탑(通度寺奉鉢塔)은 보물 제471호로, 고려시대의 탑이며 높이는 약 3m이다. 통도사의 용화전 앞에 세워져 있다. 기단부와 발형(鉢形)의 신부(身部)로 된 석조물로서 하대석은 사각형 지대석 위에 놓였고 원형의 측면에 두 줄의 테를 둘렀다. 영산전 벽화: 양산 통도사 영산전 벽화(梁山 通度寺 靈山殿 壁畵)는 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 사찰에 있는 조선시대의 벽화이다. 2011년 4월 2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711호로 지정되었다.

 

- 나무위키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