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봉의 지리적 설명
제주도가 만들어진 시기인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에 단성화산인 오름과는 달리 유일하게 현무암질 마그마가 얕은 바닷속에서 분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의 일종인 응회구이자 섯시형화산체이다. 마그마나 용암이 다량의 얕은 수심의 차가운 바닷물과 섞여서 급히 냉각되고 물이 가열되어 끓으면서 분출 초기부터 격렬한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의 폭발로 마그마가 유리질 화산재와 화산력(火山礫)으로 산산이 깨졌으며, 습기를 머금어 끈끈한 화산재는 뭉치거나 화산력 표면에 수 mm 두께로 달라붙어 피복화산력(부가화산력)을 만들었다. 끈끈하고 차가운 화산재와 화산력은 분수처럼 수증기와 함께 수백 m 높이로 솟구치며 분출했고, 분화구 둘레에 한 겹씩 원뿔형으로 퇴적층이 무수히 쌓이면서 황갈색, 짙은 회색의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뚜렷한 층리를 이루며 융기하였다. 분출물이 물기를 머금고 있었기 때문에 안식각(30°)을 훨씬 넘는 가파른 경사면(최대 45°)에 쌓일 수 있었다. 형성 직후 해수면에서 파도에 씻기며 풍화 및 침식 작용을 받아 원래의 지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침식절단면을 만들었다. 상부와 하부를 나누는 경계인 판상 층리의 높이가 현재의 해수면과 거의 일치하는데, 이를 통해 현대의 해수면과 같이 얕은 바다 속에서 침식 작용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 경계를 기준으로 일출봉 상부는 화산재와 화산력이 빗물에 씻기고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사태를 일으키며 탄낭구조가 생겼고, 사면에 놓여있던 응회층이 미끄러져 내려 겹쳐지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여 사면 아래쪽에 기왓장을 포개놓은 듯한 수평의 불규칙한 층리가 분포하게 되었다. 하부 층리는 침식 흔적으로 좌측으로 완만히 경사지며 연속적이고 평행한 형태를 갖는 사층리구조와 깎고 채운 지층이 있다. 고결도는 낮은 편이나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 기암절벽을 이룬다. 바다 쪽 해안절벽은 접근이 불가능하지만 각종 야생화가 서식하고, 분화구 서쪽 바위 틈에는 '생제'이라는 작은 샘이 있다. 생성 당시에는 제주도 본토와 1km 떨어진 화산섬이었으나, 침식작용으로 바닷가까지 운반된 화산재와 화산력이 퇴적되어 바다를 향하여 얇고 완만히 경사진 신양리층을 만들면서 사주가 발달하여 간조 때마다 본토와 이어지는 너비 500m, 길이 1.5km 남짓한 '터진목'[5]이라는 육계사주가 생겼고, 1940년엔 여기에 도로를 놓아 육지와 완전히 이었다. 이러한 수상화산은 한번 형성되면 바다에 의해 침식되어 길어도 몇백 년에 걸쳐서 사라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른 수상화산과는 달리, 성산일출봉은 침식사면 외 부분이 수천 년간 침식되지 않고 온전한 형태를 보존했다. 그래서 깎인 부분의 내부 구조 연구를 통해 생성 과정을 밝힘과 함께 깎이지 않은 부분을 연구하여 수성화산의 분출 및 퇴적과정을 이해하는 데 세계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성산일출봉은 매우 희귀한 지질학적 사레로, 하와이 오아후 섬[호놀룰루와]의 다이아몬드 헤드 산(Diamond head) 혹은 레아히(Lē'ahi)[7]과 유사하다. 성산일출봉을 중심으로 하는 성산포 해안 일대의 육상식물은 73과 179속 220, 해안식물은 127종이 발견되었다. 제주분홍풀, 제주나룻말로 지칭되는 신종 해산식물의 원산지로도 주목을 받았다. 해산동물의 경우 총 177종이 있다고 밝혀졌으며, 그중에 많은 한국산 미기록종이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탐라지를 비롯한 1960년대까지 대부분 문헌에서 성산이라고 표기해왔다. 원래 숲이 무성하고 울창하여 청산(淸山)이라고 불렸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렀고, 꼭대기는 평평하고 넓어서 마치 성과 같아 '성산(城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 후에 해돋이가 유명하여 제주도의 10대 절경인 영주10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혀 '일출봉(日出峯)'이라는 명칭이 덧붙었다. 탐라지에서는 돌을 뚫어서 사다리를 놓은 뒤에야 오를 수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탐라순력도에 이 부분이 묘사되어 있다. 몇 가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하나는 성산일출봉의 봉오리가 100개였다면 제주에도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가 났을 테지만, 하나가 모자란 99개이기 때문에 호랑이도 사자도 나지 않는다는 전설이다. 다른 하나는 일출봉 등산로 길목에 있는 '등경돌'에 얽힌 전설이다. 이 전설에 따르면 제주도의 거신 설문대할망은 일출봉 분화구를 빨래바구니로 삼고 우도를 빨랫돌로 하여 옷을 매일 세탁하였다고 한다. 옷이 단 한 벌밖에 없었기에 날마다 빨래를 했으며 밤에는 헤진 데를 꿰매 입었는데, 이때 등경돌에 불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한편으로는 고려 삼별초의 김통정이 성산에 토성을 쌓을 때 부인이 밤마다 돌에 불을 밝히고 바느질을 했는데, 부인이 불을 좀 더 밝히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자, 장군이 돌덩이 하나를 주워다가 그 위에 얹고 불을 밝히니 부인이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분화구에 형성된 넓은 풀밭은 예전에 인근 주민의 연료 및 초가 지붕을 이는 띠로 이용하기 위한 풀을 채집하는 장소였다. 농사지 및 소나 말의 방목지로도 쓰여서 매년 불을 질렀기 때문에 나무는 거의 없고 억새와 띠로 이루어진 식물군락을 비롯한 풀들과 인위적으로 심었던 대나무 군락만 남았다. 삼면이 절벽이고 서쪽은 육지로 이어져 있어서 적군 공격에 유리하여 예로부터 요새로 사용되었다. 고려 원종 12년(1271)에 김통정이 이끄는 삼별초가 여몽연합군의 공세에 대비하여 이곳에 토성을 쌓았고, 조선 선조 30년(1597) 임진왜란 때 제주목사 이경록이 수산진성을 잠시 성산일출봉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일출봉 정상 동쪽에는 봉수대가 있었는데, 북쪽으로 지미봉수, 서쪽으로 수산봉수에 연결되었다. 1943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이곳을 요새화하고자 위해 2년에 걸쳐 해안절벽에 굴 24개를 판 후 폭탄과 어뢰 및 이들을 실어놓은 쾌속정 등을 감춰두고 전쟁에 대비했지만[8] 제대로 사용도 못하고 패전했다. 오키나와 등지에서 일본군이 벌인 주민 총옥쇄 따위의 일을 생각하면, 사용도 못 해본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굴의 크기는 높이 3~5m 넓이 3m 길이 10~50m 정도로, 입구 서너 개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로 통하도록 해놓은 굴도 있다. 이 굴을 뚫을 당시 일제의 수탈이 너무 가혹하여 일부 성산리 주민들은 이를 피해 다른 마을로 이주해 갔다고도 한다. 이 굴은 이후 해녀들의 탈의장으로 사용되었고, 2006년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311호로 지정, 보호된 이후 현재는 일부 막아놓고 있으며, 송악산, 알뜨르 비행장 등과 함께 제주 내 '다크 투어리즘' 중 한 곳으로 들르는 사람들이 많다. 제주 4.3 사건 당시 이곳 성산일출봉 주변 터진목과 우뭇개 일대에서는 당시 고성리 청년들과 오조리 마을 주민 100여 명 등 많은 민간인이 토벌대에게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후 빼어난 경관과 한국 신종 생물 원산지를 비롯한 한국 대표 생물 특성 보존, 수상화산의 지질학적 가치 등 여러 이유로 1976년에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되어 보호되다가 5.02km² 넓이인 일출봉 전체와 1km 이내의 해역이 2000년 7월 18일 천연기념물 제420호로 지정, 2007년 7월 2일 성산일출봉 1.688km²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고, 2010년 10월 1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관광명소로도 유명하여 2011년에는 대한민국 자연생태관광 으뜸명소, 2012년 12월에는 한국관광 기네스 12선에 선정되었다.
관광한다는 관점에서 일출봉을 살펴보자
3월~9월 운영 시간은 07:00~20:00(매표 마감 19:00), 10월~2월 운영 시간은 07:30~19:00(매표 마감 17:50)이며, 매월 첫째 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요금은 성인 개인 5천 원, 단체 4천 원이며, 도민은 무료다. 등산길 외의 등하산교차로, 우뭇개 전망대와 우뭇개 해안은 연중 무료개방한다. 매표소에서 전망대까지는 걸어서 30분 걸린다. 등산길은 계단이 잘 조성되어 있으나, 꽤 가파르기 때문에 등산이 그렇게 수월하지는 않다. 다만 건장한 성인이라면 쉬는 시간 없이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다. 정상의 넓은 분화구에 펼쳐진 억새밭과 멀리 보이는 우도, 그리고 올라가는 도중 펼쳐지는 바닷가 풍경. 무엇보다도 정상에 올라갔을 때 볼 수 있는, 바다 위에서 고개를 슬금슬금 내미는 태양이 일출봉 관광의 묘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여서 많은 외국인들이 방문하며, 주변에는 상권이 발달하여 스타벅스와 맥도날드 등 유명 체인점과 여러 기념품점들이 많이 들어서있다. 참고로 여기 있는 체인점들은 성산일출봉 폐장 시간에 맞춰 다른 곳의 동일한 프랜차이즈보다 일찍 문을 닫으니 주의할 것. 롯데리아는 특별점인 모양인지 모바일 쿠폰도 먹히지 않는다. 일출을 보고 싶다면 전날 일출봉 근처에 있는 숙소에서 묵고 다음날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올라가는 것이 좋다. 일출봉 주변 숙소에서는 다음날 일출 시간을 입구에 내거는 것은 기본이고 숙소에 따라선 일출 시간에 맞춰 일출봉까지 차로 데려다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니 미리 알아두면 좋다. 자신이 좀 일찍 못 일어나겠다 하는 사람은 비도 피할 겸 해가 짧은 겨울에 올라가 보는 것이 낫다. 날씨는 추워도 올라가다 보면 땀이 나고 몸에 열이 오르기 때문에 괜찮다. 이렇게 해도 일출을 보는 것은 맑은 날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겠다. 일출봉의 전체 모습을 촬영하려면 신양해변에서 촬영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섭지코지나 우도에서도 일출봉의 모습을 담을 수는 있지만 성산일출봉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일출봉 입구 왼쪽에 있는 전망대와 정상부의 전망대에서는 일출과 일출봉의 일부를 함께 담을 수 있다. 매년 12월 31일에는 성산일출제가 열린다. 이때는 새해를 맞는 날이라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일출봉에는 선착순 1,500명만 올라가서 일출을 볼 수 있다. 사실 1,500명도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간이 넓은 편이 아니다. 성산일출봉에 올라가는 것도 귀찮다면 일출봉이 잘 보이는 방으로 숙소를 잡고 그냥 숙소에서 보도록 하자. 유네스코에도 올라간 명소이자 제주도 관광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장소이기 때문에 외국인 비중도 매우 높다. 대놓고 이름부터 일출봉이기 때문에 아무리 비수기라도 일출 시에 외국인이 꼭 한 명은 끼어 있다. 특히 일본에 비해 중국에는 화산 지형이 없기 때문에 중국인 단체여행의 필수 코스이다.
- 나무위키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