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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해상국립공원 명승지인 거제 해금강

by 부자손선생 2024. 4. 20.

거제 해금강

명칭의 유래

거제 해금강(巨濟 海金剛, 영어: Haegeumgang Islets, Geoje)은 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있는 명승지이다. 1971년 대한민국 명승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보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금강산 해금강과 구분을 하기 위해 '제2의 해금강', '거제 해금강'이라고 부른다. 거제도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이 매일 운행하고 있으며, 외도와 해금강을 둘러보는 노선이다. 거제 해금강은 '바다의 금강산'이라 불리며 그 모습이 각각 다르고 아름답다는 데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 해금강은 세 개의 큰 바위섬이 서로 맞닿은 섬으로, 이름처럼 그 자체가 거대한 자연의 조각품이다. 유람선을 타고 섬을 유유히 돌다보면 만나게 되는 경관은 깎아지른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와 바람이 수많은 형상들을 만든 것이다. 그 중에서 백미는 신비로운 십자동굴. 거제 해금강은 생태적 보전가치가 높은 곳이기도 하지만 명승 제2호로 지정될 만큼 빼어난 경관이 끊임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찾게 하는 것이다. 한려해상의 보석이라 부를 만한 해금강의 경관을 만날수 있다. 

관람방법

해금강은 굉장히 가파른 바위절벽으로 된 섬이라 직접 상륙할 수는 없고 기본적으로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서 관람한다. 육지에서도 해금강종점, 우제봉전망대 쪽으로 가면 볼 수 있지만, 해금강 사진들의 깎아지는 절벽이 절경을 이루는 모습은 바다 쪽 모습이며, 반대로 육지에서 바라보는 반대편의 모습은 여느 섬처럼 평범하다. 대신 이쪽은 일출 모습으로 인기가 있다. 아무튼 해금강으로 유명한 바다 쪽 면을 보려면 유람선을 타야 하는데, 해금강은 거제의 대표 관광지인만큼 거제시 여러 포구에서 유람선이 출발한다. 장승포, 지세포, 구조라, 도장포 등에서 유람선을 타고 갈 수 있는데, 지세포나 구조라는 거제 시가지에서 가까운 곳이고, 반면 바람의 언덕 옆인 도장포는 해금강에서 아주 가까운 곳인데 어디서 출발해도 요금은 만몇천원 정도로 큰 차이가 없다. 도장포 출발이 약간 더 싸고 도장포 출발은 항해거리가 너무 짧아지기 때문인지 남쪽의 다포섬을 한 바퀴 돌고 돌아가는 편수가 많은 듯 하다. 2000년대 이후로 외도가 유명세를 타면서 대부분의 유람선이 해금강과 외도 두 곳을 돌아보는 루트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외도가 주 관람지가 되고 해금강이 선택지가 된 경향이 있다. 단 외도를 안 가고 해금강만 보는 유람선도 편수는 적지만 다니고 있다. 해금강은 섬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섬 중앙에 십자모양으로 갈라진 수로가 있는데 파도가 잔잔한날 작은 유람선이나 보트로 항해할 때 십자동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일반적인 외도+해금강 루트를 달리는 큰 유람선은 이 수로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로 앞까지만 갔다가 돌아나온다. 해금강 안쪽까지 들어갔다 나오고 싶으면 도장포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제트보트를 타는 것이 낫다. 단 제트보트 특성상 안경이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놀이공원 기구마냥 빠르고 거칠기 때문에 스릴은 있지만 해금강의 모습을 느긋하게 사진 찍고 감상하기엔 좀 짧을 수도 있다. 

서복이 다녀갔다는 전설

해금강 절벽에는 진시황의 신하 서복(서불)이 명을 받아 동남동녀와 같이 불로초를 찾으러 동방으로 향했을 때 이곳에 들러 새겼다고 하는, 일종의 인증 문자인 서불과차(徐巿過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글자가 적힌 절벽은 1959년에 역대급으로 강력했던 태풍 사라가 한반도를 덮쳤을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즉 지금은 해금강에 가도 이 글씨를 더이상 읽을 수 없고 아주 미미한 흔적만이 남아있으며, 옛날에는 인지도도 낮고 찾아가기도 힘든 위치였기 때문에 이 글씨를 남긴 사진도 없다. 다만 글씨가 있었음을 전하는 기록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경상우병사였던 조익찬(曺益贊)이 1870년대에 지은 시와 1881년에 영의정 이유원이 전하는 기록이 있다. 특히 이유원의 기록은 내용이 매우 구체적인데 거제에 유배되었을 당시 해금강을 찾아 탁본을 떴고 이 글자가 옛 서법(書法)의 일종인 도해법(倒薤法)과 만세고등(萬歲枯藤)[2] 방식으로 쓰여졌으며 '사람들이 서불 2자는 맞고 과차 2자는 아니라는데, 나는 과차 2자를 보았다'라는 기록과 후에 이 탁본을 들고와서 지은 "갈도석각가(葛島石刻歌, 1881년)"를 남겼다. 서불은 당시 거제의 와현 마을에 머물다 일본으로 건너갔다고도 한다. 서복이 중국에서 동쪽으로 향하며 여기저기에 들렀다는 전설은 다른 곳에도 있으며 남해안 다른 지역과 제주도, 일본에도 전해져 내려온다. 남해군 금산에도 서불과차로 추정되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다만 "글자"인지, "그림"인지가 불분명하고 글자라고 해도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해 연구 대상이다. 그럼에도 남해군은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계곡 입구에 서복상을 세워놨다. 또 서귀포시 정방폭포 절벽에도 서복이 다녀갔다는 의미의 서불과지(徐巿過之)라는 글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서귀포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추사 김정희가 이를 발견하여 탁본을 떴다고 한다. 서귀포시도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정방폭포 근처에 서복 전시관을 지었다. 

 

- 나무위키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