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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를 파헤쳐 보자 동궁과 월지 이해하기 역사: 월지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직후인 문무왕 14년(674년)에 황룡사 서남쪽 372m 지점에 조성되었다. 큰 연못 가운데 3개의 섬을 배치하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무산(巫山)을 나타내는 12개 봉우리로 구성된 산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동양의 신선 사상을 상징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섬과 봉우리에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동물을 길렀다는 가장 대표적인 신라의 원지(苑池)이다. 5년 후인 679년에는 별궁인 동궁을 이에 건축한다. 왕궁에 딸린 연못으로 서쪽에 별궁인 임해전이 있으며, 동쪽과 북쪽은 굴곡이 심한 곡면을 이루고 있고, 연못 안에는 3개의 섬이 있다. 별궁인 임해전과 여러 부속건물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 곳을 바라보면서 연회를.. 2024. 1. 9.
경주 석굴암의 창건 이유: 알려진 이유와 음모론 경주 석굴암 역사 알아보기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의 토함산 중턱에 있는 신라의 호국사상을 잘 나타내는 암자이다. 석굴암은 남북국시대에 통일신라의 김대성이 만들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석굴사원으로 불교 문화재의 걸작이자 국보 제 24호. 현대에 그 예술성과 가치를 인정받아서 토함산 아랫자락의 불국사와 함께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신라 불교 예술의 전성기를 이룬 경덕왕 시기, 재상이던 김대성과 이성룡이 창건해서 774년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석불사로 불렸으며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도 석불사로 언급된다. 석굴암은 불교의 전래 경로였던 인도와 중국[3]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한반도는 조각 난이도가 높은 돌인 화강암과 청석류가 많고 기후도 달라 저들 나라만큼 석굴이.. 2024. 1. 9.
문경새재, 생소한 이름에 대해 알아볼께요 문경새재에 대한 이모저모: 역사와 명칭 예로부터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였다. 문경새재 길은 부산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최단거리였다. 특히, 영남지방의 선비들은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질까봐,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질까봐 가지 않고, 문경새재를 통해서 과거시험을 보러 갔다고 한다. 새재 또는 한자어로 조령(鳥嶺)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고대에는 '초점'(草岾)으로 불렸는데, 이를 한글로 옮기면 새재이다. 이후 새재를 한자표기로 변경하면서 조령으로 표기하였다. 명칭에 관한 다른 설로는 문경읍 관음리의 하늘재와 괴산군 연풍면의 이우리재(이화령) '사이에 난 고개'라는 설과 '새로 생긴 고개'라는 설이 있다. 또 옛날 이곳에 억새가 많아서 붙여졌다는 설도 .. 2024. 1. 4.
짧은 여행하기 좋은 담양 죽녹원: 소개와 교통편 짧은 시간안에 여행하기 좋은 담양 죽녹원의 소개 담양군이 성인산 일대에 죽림조성을 하면서 세운 대나무 정원이다.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대나무가 식재되어있으며 대숲길을 따라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푸르게 자라서 보이는 대나무들이 싱그럽게 펼쳐져 있어서 죽림욕을 즐길 수 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담양에서 자란 대나무가 식재되어 있으며 총 8개의 산책로를 통해서 산책과 죽림욕을 즐길 수 있다. 대나무길은 8개 코스로 나뉘어 원하는 길을 직접 갈 수 있으며 난이도에 따라 오르막길도 있는 편이다. 영화 알포인트에서 전투씬을 촬영한 촬영지가 있으며 한국방송공사 1박 2일 1기 멤버들이 담양 여행을 갔을 때 은지원과 이승기가 게임을 하다가 빠졌다는 연못이 있고 대나무 산책로 사이에 채상장전시관과 이이.. 2024. 1. 3.
구례 화엄사의 역사와 설화: 중요 문화재 정보 구례 화엄사의 역사와 설화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기 창건부터 중창시기 : 구례군이 현재 전라남도이기 때문에 화엄사가 백제와 연관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화엄사는 신라 고승들이 창건하고 중창한 절이다. 오늘날의 구례와 광양, 순천 지역은 6세기까지 가야의 영토였고,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이 가야의 전 지역을 신라에 완전히 병합하면서 이 지역도 신라에 편입되었다. 지금의 광주대구고속도로 경로를 따라 남원시에 있는 아막성까지 신라의 영역이었고 화엄사는 남원에 인접한 지리산 자락의 길지에 지어졌다. 이 지역을 신라에 편입한 진흥왕은 화엄사를 세움으로써 해당 지역 주민들의 민심을 수습하면서 지배력을 강화하고, 아울러 군사적인 목적으로도 활용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신라의 전통적인 정복지역 유.. 2024. 1. 3.
순천 낙안읍성을 방문하기 전 알면 좋은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께요 순천 방문시 미리 알면 좋을 낙안읍성의 역사적 배경은 이렇습니다. 백제의 분차군(分嵯郡)이 이곳에 있었고, 신라 경덕왕이 분령군(分嶺郡)으로 고쳤다. 고려 때 낙안군으로 바꾸었다. 조선 태조 6년(1397년)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김빈길 장군이 토성을 쌓았고, 이후 세종 9년 (1426년)에 방어를 보강하기 위해 석성으로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를 역임하던 시기에 현재의 성읍을 구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나, 이는 군수 시절에 석성을 개축한 사례와 주민들의 임경업에 대한 존경심이 복합되어서 만들어진 야사로 추정한다. 100채에 육박하는 초가집과 옛 성곽, 낙안군 동헌(군청)과 객사 등이 남아있고, 성 바로 옆에는 1970년대에 발행되었던 잡지 '뿌리깊은 .. 2024.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