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63 서울의 명소 이태원 살펴보기 이태원 경리단길 이태원은 언제부터 불리웠을까 이태원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의 역원제에서 유래한다. 역(驛)은 파발이나 관리에게 말을 대여해주는 시설을, 원(院)은 관리와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시설을 의미하는데, 과거 이 장소에 있었던 원의 이름이 이태원이었던 것이다. 이태원의 존재는 고려 공민왕이 고려를 침공한 원나라 홍건적 무리들을 피해 피란하는 기사에서 처음 등장한다. 당시 공민왕은 개경에서 안동으로 몽진할 때 파주 분수리를 거쳐 양주 영서역(현 은평구 대조동)을 지나 사평도로 한강을 도강했는데, 이 때 이태원을 지난다. 조선 효종 때 이곳에 배나무가 많았다는 이유로 이태원(梨泰院)이라고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당시 이태원의 위치를 목멱산(남산) 남쪽으로 기록하고 있고, 《.. 2024. 1. 28. 스타필드 코엑스몰을 파헤쳐보자 코엑스몰의 전반적인 상세역사 신세계프라퍼티가 운영하는 COEX 지하 1층~2층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 복합 문화 공간. 국내에 거의 최초로 들어선 복합 쇼핑몰로 2000년 5월 코엑스몰이란 명칭으로 개장한 이후 명성을 떨치다, 2016년 신세계가 운영하는 스타필드가 들어서며 스타필드 코엑스몰로 개칭했다. 참고로 코엑스몰은 스타필드가 들어서기 전인 2013년,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 2014년 11월 재개장한 적이 있다. 허나 지하철 세 정거장 위치의 잠실역에 있는 롯데월드몰과의 쇼핑몰 경쟁 구도에서 초기의 우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이후 롯데월드타워 완전 개관 등으로 인해 도리어 롯데월드몰에 밀리면서 수익에 어려움이 생겼다. 결국 사업 부진으로 2016년 12월 신세계가 새로 계약을 맺고 자사 브랜.. 2024. 1. 28. 다같이 명동 한바퀴 돌아보까요 명동의 역사를 살펴볼께요 원래는 '명례방'이라 불리었고[2], 조선시대에는 '남촌'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주로 평범한 선비들이 모여사는 주택가였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거주지가 들어서면서 상업지구로 변모되었다. 이 시절에는 메이지 덴노를 따서 메이지초(명치정)라고 불리기도 했다. '혼마치(본정)'라고 불린 충무로와 함께 그 시대 일본인들의 주요 거주지. 그리고 지금도 명동에는 주한중국대사관과 한성화교학교가 있어 인근에 중국인들이 제법 모여사는 편이다. 명동은 한국의 종교사에도 큰 영향을 미친 곳인데, 현재 명동성당이 건립된 터가 한국 천주교의 기점이라 할만한 명례방공동체 모임 장소 김범우 토마스의[4] 집이 있던 자리다. 서양 학문 연구에서 시작한 조선의 천주교가 신앙 종교로서 본격 발전한 .. 2024. 1. 24. 롯데월드에는 뭐가 있을까요 롯데월드 소개 롯데월드 어드벤처는 1984년 6월에 공사를 시작해 1989년 7월 12일 11시에 18종의 어트랙션과 함께 개장하였고, 매직아일랜드는 1990년 3월 24일에 개장하였다. 서울 지하철 2호선과 서울 지하철 8호선 잠실역 부근에 위치해 있다. 초창기에는 시장과 새나라 슈퍼가 있었으나 1990년에 새나라슈퍼는 롯데쇼핑에게 흡수되어 롯데백화점 월드점이 되었고 1998년 롯데마트 잠실점으로 이름을 바꿔운영중이며 부산 서면에도 1992년에 공사를 시작하고 1996년에 개장한 부산 롯데월드 스카이프라자가 있었지만, 자유이용권 제도와 연간회원 제도가 없어 적자를 면치 못하는 데다 1999년에 나선형 초고속 하트라인 롤러코스터 '스카이프라자 코멧'의 안전 문제로 철거되었으며, 자이안트 루프와 번지드롭은.. 2024. 1. 23. 보수의 성지라불리는 서문시장 서문시장의 역사 서문시장의 역사는 조선 중기부터 전해져 내려온다. 당시 대구읍성 북문 밖에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현재의 북성로에서 태평로를 통하는 미창골목 언저리로 추정된다. 조선 선조대에는 서울, 평양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시장 중 하나로 발전하였으며, '대구장'으로 불렸다. 조선 현종대에는 낙동강을 이용한 수로교통 및 타지와 연결된 육로교통의 발달로 대구읍성 북문 밖에서 서문 밖 (현재의 동산파출소 언저리로 추정)으로 이전하였다. 동시에 대구신장(동문시장)과 더불어 경상도 상권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 1770년에는 대구에서만 9개소에서 5일장이 개설되는 호황 속에서 칠곡읍내장과 통합을 이루어, 조선에서 유명한 큰 시장으로 발전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12월 9일에는 천황당지를 매립하여 대구장.. 2024. 1. 22. 십자형이며 고딕 성당인 대구 계산성당 계산성당의 역사 천주교 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대성당, 통칭 계산성당(桂山聖堂)은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오거리에 위치한 천주교 대구대교구교구장 대주교의 주교좌 성당이다. 본당의 주보 성인은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이다. 1911년에 대구대목구가 설정되었을 때 주교좌 성당으로 결정되었다. 현재 교적상 신자수는 12,000여명이면, 대구대교구 범어대성당 같이 주교좌 성당이다. 1885년 12월 제7대 조선대목구장 마리장귀스타브 블랑(한국식 이름:백규삼) 주교가 대구본당을 신설하고, 초대본당 주임으로 프랑스의 아킬레 바오로 로베르(한국식 이름:김보록) 신부를 임명하였다. 로베르 신부는 읍내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신나무골에서 3년간 은신하여 전교하였다. 1886년 조불 수호 통상 조약 후에 신앙의 자유가 넓게 허용되었다... 2024. 1. 21.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2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