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47

고인돌 형태와 제작방법에 대해 살펴볼께요 고인돌 형태와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고인돌은 농업과 정주 생활이 시작된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고인돌은 규모가 크고 구조도 다양한데, 약 4만여 기가 분포한다. 이는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특히나 전라남도에서 거의 2만여 기가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비록 근래까지 고인돌 귀한 줄 모르고 석재로 써먹기도 하고, 건물이 들어서면서 많이 없앴기에 유실된 고인돌도 많다.[2]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한반도 전역에서 고인돌이 계속해서 발견되어 해마다 개수가 늘어난다. 유럽에서는 기원전 3500년 무렵에 만든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카르나크 고인돌이 있다. 스페인 과달페랄 고인돌은 독일 고고학자가 1926년에 발견했는데 기원전 5천년으로 추정된다. 그러.. 2023. 12. 28.
고창 선운사의 역사와 문화재로서 가치를 알아볼께요 유서깊은 고창 선운사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께요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선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 근처에는 도적이 들끓었는데 검단선사가 도적들을 교화하여 소금 굽는 일을 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후 감사의 의미로 매년 선운사에 소금을 바쳤다는데, 이 풍습은 해방 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후 폐사가 되어 석탑 1기만 남았는데 고려 공민왕 3년(1354년)에 효정선사가 중수하였다. 조선 성종 3년(1472년)부터 10여 년 간 극유라는 승려가 성종의 숙부 덕원군에게 후원받아 대대적으로 중장했지만, 선조 30년(1597년)에 정유재란으로 본당을 제외하고 모두 불타버렸다. 광해군 5년(1613년)에 재건을 시작하여 3년에 걸쳐 대웅전, 만세루, 영산전, 명부전 등을 건립하였다. 백제 위덕왕 .. 2023. 12. 27.
남원 광한루의 역사와 오작교에 대한 일화도 알아볼께요 광한루의 역사와 배경을 알아볼께요 1414년(태종 14년)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세운 것이 시초다. 1444년(세종 26년)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광한루로 이름을 고쳤고 1461년(세조 7년) 장의국(張義國)이란 사람이 요천의 물을 끌어다가 누(樓) 앞에 은하수를 상징하는 커다란 연못을 파고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오작교를 가설하였다. 각각의 섬은 지리산을 상징하는 방장도, 금강산을 상징하는 봉래도, 한라산을 상징하는 영주도이다. 1626년(인조 4년), 임진왜란 때 모두 손실된 누각을 남원부사 신감이 재건하고 이후 영주도의 영주각을 중수하고 광한루의 큰들보를 고치고 난간을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의 명승 제33호.[1]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으며 조선 중기 천체와 우주를 상징.. 2023. 12. 23.
전주에 있는 전동성당의 역사적 의미와 건축현황을 살펴볼께요 전주에 있는 전동성당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볼께요 ]전동성당(殿洞聖堂)은 전라북도 전주시에 위치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이다. 1981년 9월 25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전주시 안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호남 전체에서 최초로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 이다. 1937년에서 1957년까지 천주교 전주교구의 주교좌성당이었으며, 건축물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영화의 촬영지나 결혼식 장소로 자주 쓰이기도 한다. 본당의 수호 성인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다. 원래 전동성당이 위치한 자리는 풍남문의 밖으로 1791년 신해박해 때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1759-1791)을 비롯하여 그의 외종형 권상연 야고보(1751-1791)이,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유항검.. 2023.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