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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 있는 전동성당의 역사적 의미와 건축현황을 살펴볼께요

by 부자손선생 2023. 12. 22.

전주 전동성당

전주에 있는 전동성당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볼께요

]전동성당(殿洞聖堂)은 전라북도 전주시에 위치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이다. 1981년 9월 25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전주시 안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호남 전체에서 최초로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 이다. 1937년에서 1957년까지 천주교 전주교구의 주교좌성당이었으며, 건축물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영화의 촬영지나 결혼식 장소로 자주 쓰이기도 한다. 본당의 수호 성인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다. 원래 전동성당이 위치한 자리는 풍남문의 밖으로 1791년 신해박해 때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1759-1791)을 비롯하여 그의 외종형 권상연 야고보(1751-1791)이,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1756-1801), 유관검 (1768-1801)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 프란치스코 (1764-1801), 김유산 토마스(1760-1801), 이우집 (1761-1801)등이 교수형을 당한 등 호남 지역의 많은 가톨릭 신자가 순교한 자리였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기독교 신앙이 허용되면서 개항지가 아니었던 전주시에도 선교사가 들어왔으며, 1891년에는 전주성당 (현재의 전동성당) 주임인 보두네 신부가 현재의 위치에 있었던 민가를 사들여 임시 본당으로 삼았다. 본당이 처음 생겼을 때에 전주읍성 주변에 신자는 거의 없었고, 주로 산골인 대승리, 고산 되재, 천호동, 배재 등지에 신자가 밀집해 있었으나,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는 등 여러 사건이 일어나면서 신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따라서 기존의 성당보다 더 큰 성당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후 1908년 명동성당의 내부를 건축한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성당이 착공되었다. 성당은 1914년에 비로소 외관 공사가 끝났으며, 이후로도 계속 공사가 진행되어 1931년에 완공되었고, 그 해 6월 18일에 대구대목구의 드망즈 교구장을 주례로 하여 축성식을 가졌다. 1937년에는 대구대목구에서 전주지목구가 분리되면서 주교좌 성당으로 지정되었으며, 첫 교구장인 김양홍 신부가 착좌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주교좌 성당으로의 역할을 하다가 1957년 중앙성당으로 주교좌가 옮겨감으로써 다시 평범한 성당으로 돌아왔으나, 이후로도 계속 전주 지역의 기독교 성지 중 하나로써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981년 9월 25일에 사적 제 288호로 지정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시위가 성당에서 몇 차례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주임 신부 및 보좌신부가 경찰의 폭력에 노출되기도 하였다. 1988년에는 원인 불명의 화재가 일어나 성당의 일부가 전소되는 등의 일도 겪었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의 일부 기독교 교회가 사회 봉사보다는 외연적 성장에 치중하는 것에 분노한 20대 청년 2명이 건물 정문에 반기독교적 낙서를 하였다가 붙잡혔다.

성당의 건축양식과 현황은 이렇습니다.

전동성당은 호남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며, 중앙의 종탑과 양쪽 계단에는 비잔틴 양식의 뾰족 돔을 올렸으며, 성당 내부의 석조 기둥에도 비잔틴 양식이 녹아 있다. 한국의 교회 건축물 중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 성당은 화강암을 주춧돌로 하여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주춧돌인 화강암은 착공 당시인 1908년에 대한제국을 간접 통치하고 있던 일본 제국 통감부가 헐은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 돌을 이용하였다. 성당을 구성하는 벽돌의 일부도 헐린 성벽에서 나온 흙을 구워 만들었다. 나머지 석재와 목재들은 각각 익산시 황등면의 채석장과 승암산의 목재를 사용하였다. 190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931년에 최종 완공되었다. 함께 있는 전동성당 사제관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다. 1791년(정조 15년) 신해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최초로 순교했던 터로서, 1889년(고종 26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보드네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경술국치 이후인 1914년 프와넬 신부가 설계하여 완공되었다. 도로변 쪽 구석에 윤지충 성상이 있다. 전동성당은 기본적인 고딕 양식의 주조에, 비잔틴 양식 돔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전주교구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 곳에서 혼인성사를 올리기 위해 꽤나 줄서서 기다린다고 한다. 전주한옥마을 내에서 경기전과 함께 주요한 랜드마크이다보니 성당 앞에는 항상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다만 이곳은 문화재이자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엄연한 종교시설이다. 이 때문에 미사 시간에는 관광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미사 시간 이외에는 천주교 신자들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는 수준 한도 내에서 성당 주변 사진을 찍어도 뭐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자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게도 그다지 좋을 수가 없다. 성당 부설 유치원(성심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동성당 바로 옆에는 전주성심여자중학교와 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들은 천주교 전주교구에서 운영하는 학교이다. 2009년 사회에 불만이 많은 20대가 역십자가와 'Anti-christ'라는 낙서를 성당 정문에 했다. 이후로 전동성당 구역에 대해 출입 제한이 생겼다.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에게 점령당한 적이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전주의 민주화의 성지 중 하나였다.

 

- 위키백과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