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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한 안면도를 살펴보자구요

by 부자손선생 2024. 4. 16.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안면도의 주요 역사적 사항

안면도(安眠島)는 충청남도 태안군에 있는 섬으로, 대한민국에서 7번째로 큰 섬(면적 113.5㎢)[1]이고, 충청남도에서는 가장 큰 섬이다. 동쪽으로는 천수만이 있고 서쪽은 황해와 접한다. 섬의 북쪽은 안면대교와 안면 연륙교로 태안군 본토와, 섬의 남쪽은 원산안면대교와 보령 해저터널로 보령시와 연결되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섬의 북부와 중부는 태안군 안면읍, 섬 남부는 고남면에 속한다. 원래 섬 전체가 안면읍이었으나, 1986년 섬 남쪽 지역이 고남면으로 분리되었다. 안면도는 본래 태안반도에서 남쪽 바다로 길게 뻗어나온 곶(串)이었는데, 17세기에 육지에서 분리되어 섬이 되었다. 섬은 안면읍의 국사봉(109m)을 제외한 대부분 산지가 구릉지대여서 조선시대에는 대규모의 목장과 농장지로 이용되었다. 안면도의 소나무는 조선 시대에 국가의 주요 자원으로서 중요하게 관리되었다. 궁궐이나 함선 등을 만드는 데 있어 필수적인 재목이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 등 주요 함선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현재도 안면송(安眠松)이라 불리며, 휴양림(안면도 자연휴양림)을 이루어 유명하다. 1970년에 대한민국의 3번째 연륙교(連陸橋)인 안면교(安眠橋, 총길이 208.5m)가 건설되었다. 안면도와 원산도, 보령시를 연결하는 원산안면대교와 보령해저터널이 각각 2019년과 2021년에 완공되어 안면도와 보령의 거리를 크게 단축시켜 서산과 홍성, 보령의 교통정체 해소와 관광자원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태안반도가 섬이였다고?

원래는 섬이 아니라 태안반도 남쪽에 붙어 있었던 '안면곶'이었다. 고려가 건국되고 후삼국이 통일된 이후 한반도 중부인 개경이 수도이자 국제 도시가 되면서 삼남 지방의 세곡은 배로 조운하는 것이 유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삼남,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금강 일대에서 출발하는 조운선이 태안반도 서쪽인 현재의 안흥항 앞바다(마도 해역)에서 침몰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전통적으로 황해를 거슬러 올라오는 조운선은 가의도와 태안 반도 사이의 안흥량을 지나는 경로를 따라 경기만에서 개경 또는 한양으로 들어왔는데, 안흥량의 물살이 빨라서 침몰 사고가 빈번했었다. 이는 고려시대 송나라에서 고려로 사신으로 온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도 등장할 정도로 험했고, 때문에 원래 이름이 '난행량(難行梁)'이라고도 했고 일대에는 '관장목', '쌀썩은내'등 다양한 지명들이 있었다. 아무튼 이로 인해 고려 중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역대 임금들은 이 태안반도를 뚫어 운하를 개통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고려 인종은 정몽주의 10대조인 정습명을 책임자로 임명해 태안반도의 최단 횡단 지점을 따라 운하를 팔 계획을 세우고 시도했다. 공양왕 때 왕강이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조선 태조도 한 번 시도하였다. 태종 때 하륜이 건의했는데, 해당 부지가 위의 왕강이 시도했던 곳이었다. 이처럼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는데, 이는 운하를 파려던 곳의 중간 부분이 단단한 암반으로 되어 있어서 당시 기술로는 팔 수가 없었고, 저수지의 규모가 크지 않고 일부 구간은 배 한대만 지나갈 수 있었고,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서 이용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 큰 배는 안흥랑을 거쳐서 가는 것은 여전했다. 여기에 운하 건설에 재정적인 부담도 적지 않아서 늘 실패했다. 그동안 전국 4대 험수로중 하나인 안흥량에선 귀한 세곡이 바다에 가라앉고 사람이 계속 죽어나갔다. 이렇게 실패만 거듭하던 와중인 1638년 당시 충청도관찰사였던 김육이 굴포운하의 확장을 포기하고 천수만과 서해의 사잇길에 판목을 덧대 운하를 만든 것이다. 이를 '판목운하'라고 하는데, 비록 원래 목적이었던 굴포운하가 아니라서 안흥량을 피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았고, 대공사인 운하 굴착을 성공시키면서 삼전도의 굴욕으로 권위가 땅에 떨어진 인조의 체면을 크게 세워줬다. 이 때 완공으로 안면곶은 육지에서 떨어져 나가 대한민국에서 영종도가 인천국제공항 조성으로 넓어지기 전까지 여섯 번째로 큰 섬인 안면도가 탄생했다. 한자 이름인 안면도(安眠島)도 이제 조운선이 침몰할 일이 없으니 '편하게 잘 수 있다(安眠)' 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안면도 항로로도 안흥량은 피하지 못하기 때문에 11번째 마지막 굴포운하 건설 시도는 조선 현종 때인 1669년이었고 역시 실패했다. 현재 태안군과 서산시 사이에는 이 굴포운하의 흔적이 남았는데, 만약 이 운하 건설이 성공했으면 약 516㎢의 태안군 전체가 섬이 되면서 국내에서는 약 378㎢의 거제도보다 큰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홍주목, 서산군, 태안군 관할이었으며 1901년 오천군이 신설되면서 이에 편입되었다가, 1906년 태안군으로 환원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태안군이 서산군에 편입되었다가, 1989년 태안군이 서산군에서 분리되어 복군되면서 태안군 관할로 돌아갔다. 바닷가지만 농업·관광업이 성한 지역이다. 주로 곡류나 마늘, 고추, 생강 등을 재배한다. 관광으로는 섬 서부의 해수욕장들과 허브 농장 등 펜션 민박촌이 주로 조성되어 있다. 섬 동부인 본토 맞은 편에는 염전이 많다. 긴해안선을 가진 장점을 이용해 관광지로서 발전을 유도하는 정도 외에는 딱히 할만한 사업이 없다. 천수만을 끼고 있지만 조력 발전과도 상관이 없다. 천수만 사업 추진 지역은 태안반도의 간월도로 안면도와 마주보고 있는 지역이다. 2016년 안면도에 국제 관광지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롯데와 MOU를 맺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차일피일하다가 사업을 포기했다. 충청남도청은 롯데 측이 토지보상금 등에 터무니없는 요구를 했다며 사업 취소를 2018년 3월 28일 공식선언한 바 있다. 안면도에서 가장 어업이 성한 곳은 백사장항이다. 꽃게, 대하, 광어, 우럭, 까나리액젓 등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안면도 수협위판장이 있어 생선이 우선 여기로 다 모인다고. 식당이나 횟집을 이용하려면 참고하는 게 좋다. 2013년 9월부터 태안반도의 드르니항과 교량으로 연결돼 있다. 

교통사항 정리

1970년 태안군 본토인 남면 신온리(드르니항 근처)에서 안면도 창기리를 연결하는 안면연륙교가 개통되었고, 이후 1997년에는 77번 국도의 일부로서 기존 안면연륙교를 대체하는 안면대교가 개통되었다. 이후 안면연륙교는 높이 2.5m, 무게 16t 이상의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참고로 원래는 두 다리 모두 왕복 2차선에 불과해 휴가철이나 명절에는 안면도를 찾을 때 병목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었지만, 2018년에 확장공사를 벌여서 현재 안면대교 쪽은 왕복 4차로가 되었다. 다만, 확장공사와 함께 본토 쪽의 신온 교차로와 안면도 쪽의 연육교삼거리는 회전교차로로 변경되었으니, 운전할 때 참고하기 바란다. 77번 국도는 섬을 남북으로 지나가는데, 안면대교에서 백사장고개(창기삼거리 진입 전)까지만 왕복 4차로이며 안면읍을 우회하는 구간을 포함해 상당수 구간이 왕복 2차로라서 다소 혼잡한 편이다. 이후 2019년 12월에 개통한 원산안면대교와 2021년 12월에 개통한 보령 해저터널을 거쳐서 보령시까지 이어지는데, 보령해저터널까지는 왕복 2~3차로[7]라서 해저터널 개통 이후 극심한 정체를 겪고 있다. 여기에 왕복 2차로로 남아있는 구간 상당수가 고개와 마을을 끼고 있어서 안전운행은 필수. 물론 일부 해수욕장의 진입로, 특히 꽃지해수욕장으로 가는 길과 그 남쪽 중장리에서 '병술만'이란 곳으로 이어지는 길은 왕복 4차로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저터널 개통 당시 교통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었던 홍성IC 경유 40번 국도, 96번 지방도(서산 AB지구) 구간은 오히려 개통 이후에도 교통량이 많아졌다. 물론 남부 지방에서 올 경우 대천IC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빠르다. 뿐만 아니라 부울경 및 호남 일부 지역에서는 이전에는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대전을 거쳐 예산수덕사IC에서 진출해 국도를 이용했다면, 이제는 남해고속도로를 거쳐 대천IC를 이용하면 거리가 상당 부분 단축되었다. 

 

- 나무위키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