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참성단의 역사를 알려줄께요
강화 참성단(江華 塹星壇)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마니산(摩尼山) 꼭대기에 있는 제단이다. 상고 시대 단군(檀君)이 쌓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1964년 7월 1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36호로 지정되었다. 자연석으로 기초를 둥글게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네모꼴의 단을 쌓았다. 면적은 5,593m2이며, 하단 원형 기단의 지름은 4.5m, 상단 방형(方形) 제단은 한 변 길이가 1.98m이다. 동서 방향에 21계단의 돌층계가 있으며, 돌과 돌 사이의 사춤에 아무 접착도 바르지 않았다. 총높이는 6m에 이른다.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 고려(高麗) 원종(元宗) 11년(1270년)에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고, 이미 고려 시대 때부터 매년 봄과 가을에 대언(大言)을 보내 하늘의 별들에 초제(醮祭)를 지냈다. 조선 세종(世宗) 12년(1430년)부터는 2품 이상의 관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인조(仁祖) 17년(1639년)과 숙종(肅宗) 26년(1700년)에도 고쳐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동왕 42년(1716년) 강화유수 최석항(崔錫恒)이 참성단을 중수하고 참성단에 동쪽 봉우리에 이르는 중간에 세운 참성단 중수비가 남아 있다. 1946년 10월 26일부터 27일(음력 10월 3일) 정오에 걸쳐 대종교 총본사인 천진전에서 채화한 성화(聖火)를 강화도 참성단까지 옮기는 행사가 대종교 기념식으로써 거행되었고, 1956년부터 매년 전국체육대회의 성화를 채화하는 곳이 되었다.
참성단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볼께요
제단은 원석을 다듬어서 쌓았다. 지천태괘(地天泰卦)의 모습처럼 천지의 교류를 위하여 아래는 하늘을 나타내는 동그란 모양을, 위는 땅을 나타내는 네모난 모양을 하였다. 제단 오른쪽 아래의 나무 밑에는 샘이 있는데, 현재는 뚜껑을 만들어 닫아 놓았다. 뚜껑의 틈으로 샘 안쪽을 들여다 보아도 물은 보이지 않는다. 마니산 정상에 참성단이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마니산 정상은 참성단 동쪽에서 헬기장을 넘으면 남쪽에 보이는 봉우리다. 이 봉우리에는 바위에 새긴 삼각점과 삼각점 안내판이 있는데, 삼각점에서 동쪽으로 약 10 m 지난 곳에 있는 바위가 마니산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참성단까지 오르는 길을 계단으로 개비하여 올라가기가 수월해졌다. 오늘날 단군을 교조로 하는 민족종교 대종교는 참성단을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여기기 때문에, 광복 이후 개천절이 제정되면서 매년 참성단에서 공식적으로 제사를 지낸다. 이 밖에 전국체육대회 등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경우에도 이 곳에서 성화를 점화하는 등 민족의 기원과 관련된 의례를 치른다.
단군신앙과 관련된 전통을 알려드립니다.
고려, 조선 양 왕조에 걸쳐 국가는 참성단에서 도교식 제전행사인 초제(醮祭)를 거행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강화도호부조에는 단군이 쌓은 제단이라는 전승을 전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단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참성단을 단군 시대의 종교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예컨대 18세기 중엽의 국학자 이종휘는 참성단을 단군 시대의 종교인 신교의 제단으로 이해하고 참성단의 제사가 도교적 성신신앙과는 관련이 없음을 주장하며 그때까지 써오던 참성단(塹星壇)을 참성단(塹城壇)으로 바꿔 썼다. 참성단의 제단은 한민족만이 갖는 고유한 형태로 자연석들에 의지하여 둥글게 쌓은 하원단과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방단의 이중 구조로 구성되었는데 이러한 원방형 제단이 중국 요하 지역의 홍산문명 유적에서도 발견돼 유사성과 함께 문화의 관련성을 살펴볼 수 있다. 마니산에 참성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은 강화의 생김새가 천하의 요새이기 때문이며, 강화도의 고유 지명인 마이(摩利) · 혈구(穴口) 등은 하늘과 인연이 깊다고 전해온다. 또 단군 개국신화(開國神話)의 등장인물인 우사(雨師)와 운사(雲師)도 마니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전해지는데, 이들은 환웅의 권속이므로 단군이 참성단을 설치하여 하늘에 제사지낸 뜻을 짐작케 한다. 한말 일제강점기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가 성립한 이후 강화도는 단군시대 정치중심지의 하나로 인식되고, 참성단의 네모난 상단과 둥근 하단은 각각 땅과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으며, 마니산은 음(땅)과 양(하늘)이 만나는 신성한 수중산(水中山)으로 이해되었고, 마니산 기슭에 단군사당이 건립되었다. 참성단을 민족성지로 서술한 기록으로는 김교헌(金敎獻)의 《신단실기》(神檀實記), 북애자(北崖子)의 《규원사화》(揆園史話), 대야발(大野勃)의 《단기고사》(檀奇古史), 그리고 《대종교중광육십년사》(大倧敎重光六十年史) 등이 있으나, 해당 저술들은 역사 기록으로써는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8·15 광복 후 대종교의 영향을 받아 개천절이 제정되면서 이에 따라 참성단도 민족의 성지로 이해하는 전통이 그대로 이어졌다.
- 나무위키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