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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현황, 형성배경 및 주요건물들을 살펴볼께요

by 부자손선생 2023. 11. 10.

공동경비구역

 

공동경비구역 현황이 궁금합니다.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Military Armistice Commission Joint Security Area), 통칭 판문점(Panmunjom)은 비무장지대의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구역이다.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3]와 북한 개성시 판문구역 판문점리 접경 동서 800m, 남북 600m에 걸쳐 장방형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휴전 당시 유엔군과 중국 인민지원군 및 북한군이 회의를 원만히 하기 위하여 1953년 10월 합의, 군사정전위원회 본부 구역 군사분계선(MDL)상에 설정한 것이다.공동경비구역 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하여 북한 측의 '판문각', 유엔 측의 '자유의 집' 등 1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대한민국 행정구역상으로는 1972년까지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였으며, 현재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이다.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개성시 판문구역 판문점리. 공식적으로는 쌍방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서북방으로 62㎞, 북한 평양시에서 대한민국으로 215㎞, 개성으로부터는 동쪽 10㎞ 지점에 있다.

 

형성배경도 알아볼께요

주로 한국전쟁 교전당시 사이에 맺어진 정전 상태를 관리하기 위한 군사정전위원회의 회의와 협상의 장소로 이용되었지만, 1971년 9월 20일에 열리게 된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을 계기로 남북한간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 및 남북한을 왕래하는 통과 지점으로 활용되었다. 19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1972년 7월 7.4 남북 공동 성명 등으로 판문점은 당시 5천만 한민족의 가슴을 한때 뜨겁게 한 바가 있고, 1973년 6월 남북조절위원회가 결렬된 지 7년 만인 1980년 8월부터는 남북총리회담의 실무회담이 이곳에서 열려 8차까지 거듭한 끝에 북한 측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공전(空轉, 없던 일로 됨)된 일도 내외의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2015년 8월 서부전선 포격 사건의 연장선으로 이루어진 남북고위급접촉으로 다시 한 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원래는 정전협정에 따라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도 주둔했으나, 1958년 중국 인민지원군 철수가 완료되었다. 그러나 중국 대표단 자체는 잔류하였으나, 1991년 3월 25일 처음으로 한국군 장성 황원탁 소장이 유엔사 수석대표로 임명된 것에 대해 북측이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니 인정할 수 없다고 정전위 보이콧을 선언하게 됨에 따라 중국의 입장이 애매해졌다. 급기야 북한은 1994년 4월 28일, 군정위 탈퇴를 선언하고 중감위의 폴란드 인원도 추방시키는 한편 조선인민군 대표부를 설치했다. 마지막 중국대표였던 노광업(盧光鄴) 대교[4]는 1994년에 북경으로 철수했으며 정전위 보이콧에 동참해달라는 북한 측의 끈질긴 요청에 중국은 1994년 9월 1일, 외교부를 통해 공식적으로 대표단 철수를 선언함으로 개성에 잔류했던 5명의 참모들까지 12월 15일에 평양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태워서 철수시켰다. 다만 중국은 정전협정의 유효성을 확인하면서 철수가 아닌 소환이란 표현을 사용, 복귀의 여지를 남기는 듯 했는데 30년 가까이 지난 2023년까지 복귀 얘기는 감감무소식이다. 2016년 2월 11일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건으로 인해 북한 측에서 판문점 연락 통로의 폐쇄를 선언한 상태다. 2018년 1월 3일 다시 판문점 연락 통로가 개통되었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남·북·유엔사 3자 협의체를 통해 협의된 후, 2018년 11월 내에 자유왕래가 허용될 계획이었다.

주요건물들은 뭐가 있지?

남북회담본부에서 만든 공동경비구역 안내도는 남북회담본부에서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자료 자체가 최신의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각 언론의 추가 자료가 나올 때마다 갱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평화의 집 항목의 경우, 남북회담본부 자료에 의하면 "1층에 기자실과 소회의실이 있다"고 되어 있으나, MBC보도에 의하면 "귀빈실과 기자실로 되어 있다"고 보도되었다. 자유의 집 구성은 다음과 같다. 각 층별 구성, 1층: 로비, 기자실, 편의시설(식당 등); 2층: VIP실, 회의실, 사무실; 3층: 남북연락사무소, 대회의실; 4층: 전망대 및 다용도 공간; 북한의 판문각에 대응되는 건물이다. 첫 자유의 집 건물은 1965년 9월 30일에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 두 동에 중간에 팔각정이 있는 형태로 준공됐다. 그러나 북한의 판문각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이고, 건평도 달랑 86평으로 대단히 협소해서 1996년 후반에 기존 건물을 싹 밀고 다시 지었고, 1998년 7월 9일에 재오픈했다. 새로 지은 자유의 집은 지상 4층에 지하 2층 규모로, 팔각정은 새로 지은 자유의 집 한켠으로 옮기는 형태로 보존되었다. 첫 번째 사진 좌측에 나온 정자가 바로 팔각정이다. 남양주종합촬영소의 판문점 세트는 새로 짓기 전의 자유의 집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판문점의 옛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장소다. 2019년 6월 30일 오후 3시 54분부터 53분간 이곳에서 남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평화의 집 구성은 아래와 같다. 각 층별 구성, 1층: 기자실, 소회의실; 2층: 회담장, 남북회담대표대기실; 3층: 대회의실, 소회의실; 자유의 집에서 13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북회담용 석조건물이다. 1989년에 지어진 3층 구조의 건물로 1층에는 귀빈실/기자실, 2층에는 회의장, 3층에는 연회실이 있다. 특이사항으로 각 귀빈실에는 전용 통신선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 곳에서 2015년 8월 22일 부터 24일까지 진행된 남북고위급접촉이 진행되었다. 또한 2018년 1월 9일날 2018년 남북고위급회담이 2년 만에 진행되었다. 2018년 4월 27일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정상회담을 위해 내부수리를 했다고 한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설명: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옛 이름은 널문다리이며 1번 국도의 명목상 구간이기도 하다. 이곳의 거의 모든 장소에는 나름의 사연이 담겨있다. 동명의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여 더욱 유명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한국전쟁 포로교환이 이루어진 장소로, '이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영화에서는 이 다리 앞에 있는 초소에서 근무를 서다 월북하였으나, 판문점을 기준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가면 공동경비구역 밖이 되므로, 이 다리 건너편의 북한군 감시초소는 병력이 많고 중무장 되어 있다. 반면 그와 대치해야 하는 한국군 감시초소는 공동경비구역 내부에 있어 정전협정에 의거 중무장이 불가능한 관계로[8] 무인 감시장비만을 가동하고 병력은 배치하지 않고 있다.2016년 8월, 북한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 북측 지역에 대인지뢰를 매설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목적은 북한군의 탈북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며 판문점 인근에 지뢰를 매설한 것은 정전협정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 나무위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