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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을 소개하고 역사와 건축물도 알아볼께요

by 부자손선생 2023. 11. 10.

남한산성 수어장대

 

남한산성을 소개합니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은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남한산을 중심으로 하는 산성이며 경기도의 도립공원이다. 병자호란 때 조선의 16대 왕 인조가 청나라에 대항하며 머물렀던 장소이며, 1950년대에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공원화된 후 현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이곳에서 40일간 항전하였으나 결국 성문을 열고 청에게 항복한 곳으로 유명하다. 남한산성은 과거 한양을 지키던 4대 요새 중 하나이며 남한산성도립공원에 속해 있다.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4km, 성남시에서 북동쪽으로 6km 정도 떨어져 있는 남한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는 총 12.4km(본성 8.9km, 외성 3.2km, 신남산성 0.2km), 높이는 7.3m이다. 원래 2천여년 전,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백제의 시조 온조의 왕성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그 옛터를 활용하여 후대에도 여러번 고쳐 쌓다가, 조선조 광해군 때(1621) 본격적으로 축성하였다 한다. 석축으로 쌓은 남한산성의 둘레는 약 12km이다. 자연석을 써 큰돌을 아래로, 작은 돌을 위로 쌓았다.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문과 문루, 16개의 암문을 내었으며 동서남북 4곳에 장대가 있었다. 성 안에는 수어청을 두고 관아과 창고, 행궁을 건립했다. 유사시에 거처할 행궁은 상궐 73칸, 하궐 154칸, 좌전 26칸으로, 모두 252칸을 지었다. 80개의 우물, 45개의 샘을 만들고 광주읍의 행정처도 산성 안으로 옮겼다. 이쯤되면 남한산성의 중요성과 성안이 유치 가능 인구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성이 축조되고 처음으로 시행(인조 17년, 1639)된 기동 훈련에 참가한 인원만 해도 12,700명이었다. 그러나 지금 성내에 남아 있는 건물은 불과 몇 안 된다. 동.남문과 서장대, 현절사, 연무관, 장경사, 지수당, 영월정, 침괘정, 숭렬전 이서 장군사당, 보, 루, 돈대 등이 남아있다. 그 중 4대문과 수어장대, 서문 중간쯤의 일부 성곽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남한산성은 사적 제 57호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남한산성 역사도 알아야겠죠!

남한산성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백제의 수도 위례성으로 추정되기도 했던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세운 성으로 알려졌으나, 신라 시대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설도 있다. 조선 시대에 인조와 숙종 때에 각종 시설물을 세우고 성을 증축하여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직전인 1907년에 일본군에 의해 다수의 건물이 훼손되기도 하였다. 1963년 1월 21일 남한산성의 성벽이 국가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고, 1971년 3월 17일 남한산성은 경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제158호), 5년 후인 1976년 7월 1일 관리사무소가 개소되었다. 1999년에는 남한산성 역사관이 개장하고, 2014년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현재에 이른다. 오늘날 남한산성은 주변 시민들에게 훌륭한 휴식처이자, 건강을 위한 등산 산책 코스로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2016년 11월 9일 남한산성의 문화재 관리기관이 종전 (재)경기문화재단에서 경기도지사로 변경되었다.

대표적인 시설과 건축물은 이래요

남한산성에는 원성과 외성, 옹성, 4대문, 암문, 치, 장대, 포루, 수구, 단, 묘, 공해, 정, 사찰, 제당 등 많은 시설물과 행궁이 있다. 남한산성 성곽이 1963년에 국가사적 제57호로 지정된 이후, 수어장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를 비롯해 숭렬전(동 제2호), 청량당(동 제3호), 현절사(동 제4호), 침괘정(동 제5호), 연무관(동 제6호), 지수당(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4호), 장경사(동 제15호), 망월사지(경기도 기념물 제111호), 개원사지(동 제 119호)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또한 2007년에는 남한산성 행궁이 사적 제480호로 지정, 2012년 복원을 마치고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성곽 : 성곽은 기본적으로 원성과 외성으로 구분하는데, 원성은 하나로 연결된 본성이며, 외성으로 동쪽에 봉암성과 한봉성, 남쪽에 신남성이 있으며, 동 · 서 두 개의 돈대가 구축되어 있다. 원성은 1624년(인조 2년) ~ 1626년 (인조 4년) 사이에 개 · 증축 당시 축성되어 둘레 7,545m다. 원성 내부는 2,135,752m3로서 대략 627,200평으로 측량되었다. 현재 원성은 남쪽과 북쪽 일부가 훼손된 상태다. 전체 8,888m의 옹성과 3,213m의 외성을 포함한 성벽의 전체 길이는 1만 2355m에 이른다. 성벽은 자연석으로 막돌쌓기를 하였는데, 높은 성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큰돌을 아래에 쌓고 작은 돌을 위로 쌓았으며, 성벽은 위로 갈수록 안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성벽의 높이는 3~7m이다. 성벽 : 원성은 높이가 약 3~7m내외로 다른 성곽에 비해 전체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이것은 이 산성이 조선 시대부터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서 여러 차례 수축이 되어왔고, 1971년 산성 전역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성벽에 대한 보수작업이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성벽은 지반 위에 잘 다듬은 장대석을 쌓고 막힌줄눈 바른층쌍기를 하였다. 성돌은 지대석의 크기가 50 cm × 30 cm 정도이고, 그 위로 두께 20 cm 내외에 폭 30~50 cm 정도 크기의 면석을 정다듬하여 쌓았다.

주변의 자연환경도 좋아요

남한산성의 전반적인 지형은 청량산(497m)과 남한산(480m)을 중심으로 급경사로 된 화강편마암의 융기 준평원으로서, 주봉인 청량산(482.6m)을 중심으로 북쪽의 연주봉(467.6m), 동쪽으로 남한산의 주봉인 벌봉(522m)과 망월봉(502m), 남쪽으로 한봉(414m)을 비롯한 몇 개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은 성이다. 남한산은 풍화에 강한 경기변성암 복합체로 이루어져있다. 산아래 해발 400m 내외의 고도에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비교적 넓은 면적의 평지가 펼쳐저있으며, 고위평탄면으로 알려져 있다. 이 평지는 화강편마암의 융기 준평원으로 넓은 구릉성 분지를 이룬다. 남한산 주변은 서고동저의 기복을 형성하며, 서쪽은 대체로 경사가 급하고 험하지만, 내부의 평지를 지나 동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대체로 완만한 편이다. 산정을 중심으로 서쪽 저지에는 한강의 지류인 탄천, 동쪽에는 또다른 지류인 광안천이 북으로 흘러 본류와 합류한다. 결코 완만하지 않은 산 자체의 경사가 성벽과 결합하여 단단한 자연 방어선을 이루는 관계로 공격자의 입장에서 굉장히 공략하기 어려운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게다가 성안에는 45개의 연못과 80여 개에 달하는 샘이 있어서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아 장기간 농성에 유리하다. 하지만 분지 내에는 고산지대인 관계로 하천은 미약하고, 산성천이 유일한 하천으로 수문을 통하여 동쪽으로 흘러가면서 산성리에서 엄미리에 이르는 약 8 km 구간이 침식곡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산정의 급경사면에 비해 북부 산록에는 경사가 하부로 갈수록 완만한 산록 완사면이 발달하고 있다. 또한 산성 안에는 산성천이라 불리는 소하천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고을을 관통한 뒤 동문 옆 수문을 통해 빠져나간다. 한편 산성내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비록 남한산의 수목에 대한 벌목을 금지하는 법령이 만들어졌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전쟁과 민간의 난방연료 수요로 인해 남한산의 식생은 비교적 황폐하였다. 이에 따라 산사태가 빈번해지자 철종 연간에 산성마을의 유지가 사재를 출연해 1만 그루가 넘는 소나무를 식재했으며, 고종 때에도 성내 산사태 피해지와 인근 민둥산에 1만 5천주의 소나무를 식재했다. 한편 남한산성의 식생은 주로 활엽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림군락이 분포한다. 남한산성에는 신갈나무와 갈참나무,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밤나무, 잣나무, 아까시나무 등이 조림군락을 이루고 있다. 2007년에 실시된 남한산성 북사면의 산림식생에 관한 연구에서는 남한산성 북사면에 총 137종, 평균 약 22종의 식생이 분포한다고 보고했다. 남한산성은 한강변의 가시권에 속해서 강북의 아차산 일대와 더 북쪽의 불암산과 인왕산까지도 조망이 가능하다. 남한산의 서북쪽은 백제의 중심지였던 풍납동, 방이동과 그아래 몽촌토성 일대이며, 동북쪽은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한 6세기 이후로 한산주와 광주의 읍치가 있었던 이성산성이 있는 하남시 춘궁동 일대이다. 이들 역사 유적들은 남한산성으로부터 직선거리로 5~6 km 거리로 징검다리식 위치에 놓인다. 연평균 기온은 인접 지역과는 고도 차이로 인해 약 4도 정도 낮은 기온이 나타나며, 연평균 강수량은 1,300mm ~ 1,400mm이다. 맑은 날의 평균 일수는 약 204일로 봄과 늦가을에 맑은 날이 많다. 산간 지역의 계절 변화는 평지보다 1~2주 늦게 봄이 오고 일찍 겨울이 온다.

 

-위키백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