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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엑스포 : 1993년 인기와 파급력, 주요 전시관을 소개합니다

by 부자손선생 2023. 12. 1.

엑스포 공원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대전엑스포 93)

대한민국 대전직할시(現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덕연구개발특구에서 열린 엑스포. 주제는 "새로운 도약으로의 길"이고, 부제는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의 조화"와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활용"이다. 1993년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정확히 93일 동안 개최되었다. 서울 올림픽이 열린 지 불과 5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된 대규모 국제 행사이다. 1993년 세계 박람회(대전 세계 박람회(대전 엑스포, 大田世界博覽會))는 1993년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93일간 대한민국 대전 대덕연구단지 일대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로, 대전 엑스포(영어: Daejeon Expo '93, 당시 명칭:영어: Taejŏn Expo '93)라고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국제박람회기구의 공인을 받아 개최한 엑스포이며, 주제는 ‘새로운 도약에의 길’, 부제는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의 조화’와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활용’이었다. 태극을 변형한 엠블럼과 마스코트 ‘꿈돌이’가 상징이었다. 이후 한꿈이는 대전광역시의 공식 마스코트가 되었고, 꿈돌이와 한빛탑은 과학도시 대전을 상징하게 되었다. 세계 108개 국가와 33개 국제기구, 대한민국의 200여 개 기업이 참가했고, 국내외 1450만 명이 관람했다. 정부는 박람회를 위해 총 1조7180억원의 재원을 투자했다. 대전엑스포 직접 관련 사업인 회장 건설 등에 4000억원을 투자한 것 외에도 정부는 기반시설 확충 사업에 2000억원, 고속도로 확장 등 주변 여건 조성 사업에 7000억원을 쏟아부었다. 국내외 전시 참가자들도 전시관 건설에 모두 3000억원을 투자했다. 이 행사에서 대한민국은 과학기술, 경제, 문화, 환경, 지역 발전 등 여러 분야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됐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대전엑스포를 통해 생산 유발액 3조643억원, 소득 유발액 1조2500억원, 고용창출 효과 21만2000명 등 경제적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했다. 또 수입 유발액은 4455억원으로, 국제 수지 개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전은 새로운 수요 창출과 도시 기반 정비, 시민의식 향상 등 눈에 보이는 변화와 함께 과학기술 분야의 성장 잠재력을 갖춘 도시로 거듭나게 됐다. 박람회가 끝난 이후 박람회 시설은 엑스포과학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개장했다가 현재는 거의 없고 신세계백화점 대전 Art&Science지점과 엑스포타워가 들어섰다. 2013년 8월에는 대전엑스포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2013 대전사이언스페스티벌과 함께 대전엑스포과학공원, 대전컨벤션센터 일원에서 개최되었다.

 

당시의 인기와 파급력은 어느정도 였을까?

1893 시카고 엑스포에 8칸 규모의 기와집(사진)으로 참가한 지 100년 만에 스스로 주최국이 된 엑스포이다. 또한 이 엑스포는 성숙된 민주주의 정권하에서 개최된 대규모 국제 행사로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이미지를 알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당시 발전을 거듭하던 한국의 저력이 제대로 발휘된 행사로, 대한민국이 가장 희망으로 가득찼던 황금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세계 108개국과 33개 국제 기구, 대한민국의 200여 개 기업이 참가했다. 정부와 민간이 합쳐 1조 8천억 원을 들였고, 대한민국 국민 3명 중 1명꼴인 1450만 명이 관람하여 대박을 쳤다. 덧붙여 대기업들이 주요 전시장을 후원했다. 대표적으로 럭키금성그룹이 테크노피아를, 삼성이 우주탐험관을 지원했다. 이 엑스포 하나 한다고 조차장인 대전조차장역에 엑스포역이라는 임시승강장까지 놓았는데도 사람이 꽉 찼을 정도였다고 한다. 행사 당시에는 밤이 되면 밤마다 레이저 기둥을 쏘아 올리는 건 기본이었다. 화려하다는 말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게다가 당시 12시 넘어서는 심야 영업 규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되던 중이었으나 엑스포와 유성온천을 두고 있는 대전 유성구는 관광특구로 지정되어서 그런 규정에 해당되지 않았으므로, 12시쯤 되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노는 사람들까지 몰려와 유성구 지역은 다음날 새벽까지 말 그대로 난장판을 이뤘다. 당연하지만 엑스포 기간 동안 내내. 이들은 당시 유성의 궁동 지역을 압구궁동으로 부르기도 했다. 1990년대에 지리적으로 대전에 가까운 지역을 넘어 전국의 국민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많이들 가봤다. 또한 이듬해(1994년) 졸업반이었던 나이층의 학생들[10]은 이곳에서 졸업 앨범용 사진을 촬영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특히 개최지인 대전은 정도가 너무 심했는데, 특히 엑스포 회장에서 바로 걸어서 10분, 5분 거리에 위치한 대덕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대덕중학교, 대덕고등학교는 소풍 장소 50% 이상을 이 엑스포과학공원과 근처 국립중앙과학관으로 배정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엑스포가 열린 1993년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약 7년 동안 엑스포 주변으로 소풍만 8번을 간 경우도 있을 정도. 바로 앞에 있는 대덕중학교의 경우 소풍을 가면 꼭 엑스포장으로 갔는데, 당시 소풍을 가면 사복을 함께 지참하였고, 아침에 엑스포장에 들어가면 가지고 간 사복으로 갈아입은 후 둔산동으로 가서 놀다가 귀가 전에 다시 들어와서 교복으로 갈아입고 귀가하는 식이었다. 물론 다시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 다음날 엉덩이에 불 나는 학생도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 최초로 서울특별시가 아닌 지역에서 개최된 세계구급 행사로서, 방송 3사에서 전야제를 생중계하고 그밖에도 지상파 뉴스에서 꾸준하게 소식을 다루었다. 영화배우 소피 마르소가 방한하여 국제관 프랑스 부스에 방문한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특히 당시는 평일 낮방송 정파 시간이 있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방송이 나가지 않았는데, 엑스포 기간에는 방송 시간이 앞뒤로 30분 연장되어] 해당 시간에는 지상파 3사가 모두 엑스포 관련 뉴스와 콘텐츠 등을 방송했다. 당시 꿈돌이안내에서 운영되던 인터랙티브 키오스크는 Windows 3.1 기반이었으며, 터치스크린을 장착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개별 전시관 방문을 예약할 수 있었는데, 이는 2000년대에 등장한 여러 테마파크에서 개별 어트랙션에 대해 실시하는 예약 제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예약을 하기 위해 개장하자마자 사람들은 꿈돌이안내소로 우르르 달려갔다. 예약 제도를 실시하지 않는 전시관들도 있었는데 여기는 개장하자마자 전력질주로 뛰어서 줄을 서야 했다.

 

주요전시관에 대한 설명

2020년 기준 한빛탑과 전기에너지관, 정부관[17]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되어 사라졌다. 전기에너지관과 정부관은 리모델링, 번영관은 대전국제전시컨벤션센터로 재건축 예정이며, 미래항공관은 제주도로 해체 이전하였다. 도약관: 국내 5개 참가사가 공동으로 사용했던 전시관으로 당시 금강제화, 동아오츠카, 유한킴벌리, 데이콤 등이 있었다. 금강제화는 금강제화 전시관을, 유한킴벌리는 숲속의 극장을, 동아오츠카는 포카리수족관을, 데이콤은 데이콤관, 유호 I.B.E.는 파이워터시스템관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철거되어 사라졌으며 폐막 이후 옛 정부관 건물로 자리를 이전하였다. 현재 도약관이 있던 자리에는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아이호텔 건물이 세워져있고 일부분은 대전컨벤션센터의 부지로 들어가있다. 롯데환타지월드 : 호텔롯데 월드사업부가 제공한 전시관으로 국제전시구역 안에 위치해 있었다. 물과 불을 이용한 공연인 '환상의 오딧세이'가 공연되었다. 행사 폐막 후에는 건물이 철거되었으며 '환상의 오딧세이' 공연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 어드벤처에서 재개장되었다. 그러나 시설 노후화 및 2012 여수 엑스포의 롯데관 시설 유치를 위해 2012년 11월 11일 운영 종료. 현재 롯데월드의 이 자리에 로티의 열기구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운영중이다. 특이하게도 롯데월드 어드벤처의 캐릭터인 로티와 로리를 사용하였다. 1993년 당시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엄청난 전성기를 누린 덕분인데, 150억 원을 들여서 대형 다크라이드인 환타지 드림을 파격적으로 오픈하였으며 동시기에 함께 개장한 회전 바구니와 고공파도타기 등도 엄청 인기가 많았다.현재 호텔ICC가 있는 곳이 과거 롯데 환타지 월드의 자리다. 미래항공관 : 대한항공이 제공하였다. 격납고처럼 생겼다. 입구에는 '창공-91'이라는 지금은 반쯤 흑역사가 되어버린 자체 개발 항공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민항기 시뮬레이터를 체험해 볼 수 있었으나, 단 두 명만 탈 수 있는 구조상 선택받은(!) 어린이들만 조종사 시트에 앉아볼 수 있었고, 메인쇼로는 360도 원통형으로 생긴 슬라이드 영상물이 상영되었는데, SK그룹의 이매지네이션관 프리쇼(메인쇼 전에 보여주는 일종의 전채요리)와 비슷했지만 이매지네이션관의 경우 이음새가 없는 스크린이고 이곳의 스크린은 이음새가 있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전시관에는 당시 계열사였던 한진중공업 철도 차량 부문[18]에서 제작한 새마을호 동차에 쓰인 실물 크기의 대차 모형도 전시되어 있었다. 상설관으로 건립되지 않았으나, 대한항공 측에서 건물을 버리긴 아까웠는지 폐막 후 제주도의 정석비행장에 해체 이전(!)하여 정석항공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대한항공은 도우미들의 교육 및 운영도 맡았다. 현재 사이언스콤플렉스와 기초과학연구원 부지 사이 도로가 과거 미래항공관의 자리였다. 번영관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제공한 전시관으로 국제전시구역 입구에 있었던 무역전시관이었다. 행사 종료 이후 KOTREX라는 이름으로 리모델링되었고, 이 건물에서 감동의 골마로 유명한 EVER 스타리그 2004 결승전이 열렸다. 이후 소유권이 KOTRA에서 대전관광공사로 넘어가며 대전무역전시관으로 이름이 한번 더 변경되었다가 2019년 연말에 철거되었고 대전컨벤션센터 제2전시장으로 재건축되었다.

 

- 나무위키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