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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지정된 전통 민속마을 : 안동 하회마을

by 부자손선생 2024. 2. 19.

안동하회마을 초가집

안동 하회마을의 역사와 특징

풍산 류씨 집안의 발상지이며 그들의 자손들이 여기에 머물러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서애 류성룡과 겸암 류운룡이 이 곳에서 태어났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강거의 제일은 평양이요, 계승의 제일은 하회'라고 극찬하였다. 특히 류성룡은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의 학설에 따라 이기론(理氣論)을 펼치고 양명학을 비판했으며 이황의 이선기후설(理先氣後說)을 좇아 기(氣)는 이(理)가 아니면 생(生)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여 기보다 앞서 있는 실체로서의 이를 규정했다. 류성룡은 양명학의 핵심적 이론인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과 치양지설(致良知說)이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 지나치게 곧아진(矯枉而過直)’ 폐단에 빠진 것으로 불교의 학설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하나에 치중됨이 없이 병진해야 한다는 지행병진설(知行竝進說)을 주장했다. 그가 남긴 저작 중 『징비록』(懲毖錄)은 이러한 ‘알면 행하여야한다’는 지행병진설이 잘 반영된 책으로 알려 있다. 참혹한 국난의 하나였던 임진왜란에서의 아픈 경험을 거울삼아 다시 그러한 수난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세를 경계하기 위하여 남긴 저술이다. 안동 하회마을(安東 河回마을)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전통 민속마을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들은 보물 2점, 국가민속문화재 9점 등을 포함하여 11점이고 이밖에 국보 2점이 있다. 2010년 7월 31일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의 제34차 회의에서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되었다.

민속놀이 및 풍습

하회마을에는 여러가지 민속놀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진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있고 그 외에도 양반 놀이인 선유 불꽃놀이와 서민 놀이인 별신굿 탈놀이가 있다. 마을 안에 놀이마당이 있으며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양반/선비마당, 혼례마당, 신방마당, 파계승마당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추석 제사를 추석이 아닌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지낸다. 이는 추수가 늦어지는 경북지역 곳곳에 남아있는 풍습이었으나, 거의 사라지고 하회마을 정도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설날 제사는 그대로 음력 1월 1일에 지낸다. 음력 9월 9일, 1월 1일에 가면 도포입은 사람을 때거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제례에 대한 촬영도 대개 허용되므로 음력 9월 9일에 찾아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평일이면 사람도 적다. 이 때는 오전 10시, 11시, 12시 마을 내 3곳의 종가에서 돌아가면서 명절 제사를 지내는 것이 특징이다. 참고로 도포를 입은 아재들과 사진을 찍고 싶으면 정중하게 부탁해보자. 거의 대부분 흔쾌히 촬영에 응한다. 

무형문화재와 유형문화재

안동 하회마을은 하회탈춤으로도 유명하다. 선유 불꽃놀이는 선비들의 놀이이고, 별신굿 탈놀이는 서민들의 놀이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 : 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인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약 500년 전부터 10년에 한번 정월 보름날 또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서낭신에게 별신굿을 해 왔는데, 굿과 아울러 서낭신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행하여 지던 탈놀이였다. 우리 나라의 탈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탈을 쓴 광대가 양반을 향해 온갖 쓴 소리를 내 뱉는다. 이는 서민의 유일한 언로였다. 1928년 이후로 단절되다가 류한상 전 안동문화원장이 화회탈과 함께 발굴하여 재생을 하였고, 서울대학교 이두현 교수에 의해 대사관을 통해 홍보되었다. 놀이마당은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과 선비마당, 혼례마당, 신방마당의 여덟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유 줄불놀이 : 한여름 무더위가 계속되는 매년 음력 7월 16일, 안동의 선비들이 부용대 단애 밑을 흐르는 강 위에서 선유시회를 겸한 불꽃놀이 축제를 벌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선유 줄불놀이다. 

유형문화재 : 징비록 : 징비록은 국보132호로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기록한 기록물이다. 필사본 징비록은 경상도 관찰사 조수익이 서애 손자의 요청으로 인조 25년에 16권 7책으로 간행하였으며, 숙종 21년에는 교토 야마토야에서도 간행되었고, 1712년 조정에서는 징비록의 일본 유출을 금하였다. 하회탈 : 하회탈은 국보 제121호로 우리 나라에서 현존하는 탈 중 가장 오래된 탈이다. 지금은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 9개의 탈만 전해지며, 이 중 3개의 탈은 분실되었다. 입암고택 또는 양진당 : 보물 제306호인 입암고택은 입암(立巖) 류중영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立巖古宅) 또는 양진당(養眞堂)이라고 부른다. 현재 풍산 류씨 겸암파의 대종택으로 보물 제306호이다. 사랑채는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을 가지며, 안채는 조선의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는 고려와 조선의 건축양식이 공존하는 고택이다. 충효당 : 보물 제414호인 충효당은 서애의 문하생과 삼림들이 장손 류원지를 도와서 지었고, 증손자 류의하에 의해 확장된 조선시대 사대부 양식의 고택이다.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이 별도로 건립되어 서애 선생의 저서와 유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바깥마당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기념식수가 있다. 작천고택 : 국가민속문화재 제87호로 작천고택 또는 류시주 가옥이라고 부른다. 원래 작천 류도관의 호를 따서 작천고택이라고 불렀는데, 현재의 집주인인 류시주의 이름을 따서 부르기도 한다. 조선중기의 건축양식을 다랐으며, 1934년 대홍수로 1채가 유실되고 현재는 일자형의 안채만 남아있다. 사랑방에서 안방으로 이어지는 앞마당에는 작은 토담을 쌓아 사랑방 손님과 안채의 부녀자가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만든 것이 재미있는 특징이다.
하동고택 : 국가민속문화재 제177호로 하회마을 동쪽에 있다고 하여 하동고택이라고 불린다. 귀촌고택 : 풍산 류씨 귀촌파(龜村派)의 종가집이며, 사당에는 귀촌 류경심 공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그의 어머니 영양남씨와 며느리 문소김씨는 모두 열녀로 정려비가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북촌댁 : 국가민속문화재 제84호로 북촌댁은 1797년 정조 21년에 지중추부사 류사춘에 의해 처음 건물이 세워졌고, 1862년 철종 13년에 경상도도사 류도성에 의해 증축되어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마을 북쪽의 99칸 집으로 불리었으며, 사랑채와 안채, 별당, 사당, 대문간채를 두루 갖춘 전형적인 사대부 집의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다. 주요 건축물로는 큰 사랑채인 북촌유거와 중간 사랑인 화경당, 작은 사랑인 수신와를 비롯하여 안채, 등이 있고, 류이좌의 유품이 몇 점 남아 있다. 2007년 2월 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였고, 2008년 한류스타 배용준이 이곳 화경당에서 하룻밤을 묵고 갔다. 남촌댁 : 국가민속문화재 제90호로 정종 21년 지은 99칸의 건물로 하회마을 남쪽 사대부의 가옥을 대표하였으나, 1954년 화재로 안채와 사랑채가 소실되고 내부에 있던 진귀한 도서와 골동품들이 모두 불타버리고, 현재는 대문간채와 별당, 사당만 남아있다. 주일재 : 주일재는 국가민속문화재 제91호로 사랑채, 안채, 사당, 광채로 구성되어 있다. 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사랑채가 이고, 왼편으로 내외담이라고 하는 작은 담장이 있다. 안채로 통하는 문 앞에 쌓아서 안채가 보이지 않게 하였다. 지산서루 : 지산서루(志山書樓)는 대문없이 널찍한 정원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채와 안채가 있는 고택이다. 사랑채는 정사와 유사한 형태로 지어졌으며, 우승지와 대사간을 지낸 류지영이 독서에 매진하기 위해 지은 도사관이다. 그의 호를 따서 사랑채 이름을 지산서루로 하였다. 하정재 : 원지정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택으로 사랑채의 마루에서 보면 부용대와 시내가 한눈에 보이며 동쪽으로는 화산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전형적인 선비의 음풍농월을 즐길 수 있는 고택이다. 담연재 : 담연재는 신축된 전통양식의 저택이며,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 때 이곳 앞마당에서 하회탈춤 공연이 펼쳐졌던 곳이다. 탤런트 류시원의 부친 소유의 저택이다. 

 

- 나무위키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