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유서깊은 사찰 대흥사의 연혁에 대해 알아봅시다
임진왜란 때 휴정(서산대사)이 거느린 승군(僧軍)의 총본영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1604년(선조 37년) 서산이 자신의 의발을 이곳에 전한 후 크게 중창되었다고 한다. 이때 휴정은 삼재가 들어오지 않아 만세토록 파괴됨이 없는 곳이라고 하였고, 6.25 전쟁 당시 해남이 북한군에게 점령당했음에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입구 앞에서는 사적지로 지정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로 향하던 해남 군민들이 떠나기 전에 음료와 식사를 제공했던 공터가 있다.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의 두륜산 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이다. 대둔사(大芚寺)라고도 한다. 역사적 · 학술적인 가치를 인정 받아 2009년에 사적 제508호로 지정됐다. 《만일암고기》(挽日菴古記)에 따르면 신라의 승려였던 정관(淨觀)이 서기 426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죽미기》(竹迷記)에는 544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을 자장과 도선(道詵)이 중건했다고 되어 있다. 대흥사(大興寺)는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위치한 두륜산 도립공원 내의 절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이다. 대둔사(大芚寺)라고도 불린다.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대흥사의 주요문화재는 상당히 많네요
2009년 12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08호로 지정되었다. 지정사유는 다음과 같다. 대흥사는 고려 이전에 지어진 사찰로서,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수되면서 17~18세기 서산종의 종찰로 선·교 양종의 대도량 역할을 한 사찰이다. 경내에는 국보 제308호 대흥사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을 비롯하여 국가지정문화재 7점과 시도지정문화재 6점, 그리고 13대종사와 13대강사 등의 부도와 비석들이 소재한 역사적·학술적으로 중요한 유적지이다. 1975년 9월 2일 명승 제4호 '해남 대둔산'으로 지정되었다가 1998년 12월 23일 사적 및 명승 제9호 '해남 대둔산 대흥사 일원'으로 재분류되었다. 경내에는 대웅보전, 침계루, 명부전, 나한전, 천불전, 응진전, 용화당, 표충사, 서산대사기념관, 대광명전, 만일암 등의 건물, 응진전 앞 3층석탑, 북미륵암 3층석탑이 있다. 그 외에 국보 제308호로 지정된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서산대사를 비롯한 여러 유명한 스님의 부도(浮屠, 사리)와 탑이 있다. 대흥사 뒤편을 따라 올라가면 다승 초의선사가 기거하던 일지암이 있으며, 현재도 대흥사에서는 매년 초의선사 문화제를 통해 다례를 전파하는 행사를 갖는다. 대웅보전의 현판은 원교 이광사가, 무량수각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썼는데 여기에는 일화가 있다. 천불전: 천불전과 천불(1,000분의 불상)이 1811년 화재로 불타자, 불에 타지 않는 옥석으로 천불을 다시 제작하였는데, 옥석의 산지인 경주에 40여명의 스님들이 모여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천불을 완성했다. 완성된 불상은 큰배에 768개, 작은배에 232개를 싣고 울산 바다를 출발했는데, 작은배는 전라도 해남에 도착했으나 큰배는 동래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일본 나가사키에 닿았다. 일본 측에서는 불상이 바다를 통해 온 것을 상서롭게 여겨 일본땅에 768불을 모시는 절을 짓고자 하였으나, 일본 승려 꿈에 불상이 나와서 자신은 '조선국 해남 대흥사로 가던 길이었으니 일본땅에 봉안될 수 없다'라고 하자 일본은 표류한 승려들과 불상을 되돌려 보내주었다.
불상을 실은 큰배의 일본 표류 이야기는 큰배에 탔던 풍계대사가 쓴 『일본표해록』과 일본 화가가 표류해온 불상을 보고 그린 『조선표객도』그림에 남아있다. 또한, 소식이 끊겼다가 한해만에 살아서 돌아온 일행과 고스란히 도착한 768개의 불상의 소식을 당시 해남에 유배와 있던 정약용이 듣고서 일본에 다녀온 불상 어깨에 표식을 남겼다. 비석 목록은 다음과 같다. 풍담당대사비: 1675(숙종 1)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대흥사의 13 대종사 중 한 명인 풍담 의심을 기리는 비석이다. 월저·설암대사탑비: 1739(영조 15)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대흥사의 13 대종사 중 3대 종사인 월저 도안月渚道安(1638-1715)과 5대 종사인 설암 추붕雪巖秋鵬(1651-1706)의 삶을 기리는 비석이다. 대둔사 사적비: 1744(영조 20)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대흥사의 창건과 중수 내력을 적은 비석이다. 함월대사비: 1773(영조 49)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대흥사의 13 대종사 중 한 명인 함월 해원涵月海源(1691-1770)의 삶을 기리는 비석이다. 청허당대사비: 1778(정조 2)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청허 휴정淸虛休靜(1520-1604)을 기리는 비석이다. 서산대사 표충사 기적비: 1791(정조 15)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청허 휴정淸虛休靜(1520-1604)의 충절을 기리는 비석이다. 표충사 건사사적비: 1792(정조 16)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청허 휴정淸虛休靜(1520-1604)을 기리는 표충사의 역사를 기록한 비석이다. 연담화상비: 1803(순조 3)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대흥사 13 대종사 중 한 명인 연담 유일蓮潭有一(1720-1799)의 삶을 기리는 비석이다. 호암대사비: 1822(순조 22)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대흥사 13 대종사 중 한 명인 호암 체정虎巖體淨(1687-1748)의 삶을 기리는 비석이다. 환성대사비: 1822(순조 22)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대흥사 13 대종사 중 한 명인 환성 지안喚醒志安(1664-1729)의 삶을 기리는 비석이다. 완호대사탑비: 858(철종 9)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대흥사 13 대강사[3] 중 한 명인 완호 윤우玩虎倫佑(1758-1826)의 삶을 기리는 비석이다.
찾아가시는길 간단히 알려드립니다
교통은 조금 불편하다. 해남군 전체에서도 상당히 깊숙하게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가장 가까운 고속도로 나들목인 남해고속도로 강진무위사IC에서도 30km 이상을 가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해남종합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대흥사 밑 주차장의 정류장까지 가는 농어촌버스가 있다.
- 나무위키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