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47 경상북도 청송군의 국립공원인 주왕산 주왕산 이라는 이름의 기원 '주왕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중국 당나라 때의 주도(周鍍)는 스스로를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당나라 수도 장안을 공격했으나 안록산의 난을 평정한 곽자의(郭子儀) 장군에게 패하여 요동으로 도망쳐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사람을 주왕(周王)이라고 한다. 주왕은 반란이 실패하자 멀리 한반도의 석병산으로 피신했다. 그는 산입구가 되는 주방천 협곡에 산성(자하성)을 쌓고 재기를 노린다. 나중에 주왕이 신라 땅에 숨어 들어간 것을 안 당나라에서는 그를 잡아달라고 신라에 요청했다. 신라는 마일성 장군의 형제들을 필두로 진압군을 이곳 석병산으로 보내 주왕과 그의 군사들을 격퇴했다. 신라군과의 싸움에서 패한 주왕은 폭포수가 입구를 가리고.. 2024. 2. 27. 부산의 명물 태종대 둘러보기 태종대의 전설과 소개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에 있는 명승지(국가 지정 명승지 제17호)이다. 이름의 유래는 신라 태종 무열왕이 들러서 활쏘기를 하고 연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안정복의 동사강목에서는 태종 무열왕이 일본 대마도를 공격해 토벌했을 때 주필(駐蹕)한 곳이라는 기록도 있는데, 무열왕의 대마도 공격은 고려시대 이전의 기록에서 교차검증되는 부분이 아니라 큰 주목을 받진 못하고 있고 아무튼 조선시대에 그런 전승이 전해지고 있었다는 근거는 된다. 인터넷이 잘 없던 시절에는 일반 대중들에게 조선 태종 이방원이 행차하였던 곳으로 아주 크게 알려져 있었다.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이 남해 바다와 어우러진 비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태종대는 9천만 년 전엔 호수였지만 신생대에 와서.. 2024. 2. 26. 경상남도 진주의 명물 : 진주성 진주성의 개략적인 연혁과 개요 본래 토성이었던 것을 1379년 고려 우왕 5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이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 석성으로 개축하였고, 고려 말 공민왕 때 7차례 중수되었고 주로 왜구를 방어하는 기지로 사용하였다. 1591년(선조 24년) 7월 경상도관찰사 김수는 진주성을 수축하고 외성(外城)을 쌓았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그해 10월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은 3,800명의 군사로 3만 여명의 왜적을 물리쳐 진주성대첩을 이룩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이 10월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을 대파하여 임진왜란 3대첩중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이룬 곳이며,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진주목사 서예원 및 7만여명의.. 2024. 2. 25. 부산의 명물 자갈치시장 자갈치시장의 역사 1945년 광복 후에 시장이 형성되었고, 당시에는 남포동 시장이라고 불렸다. 자갈치 시장의 이름의 유래는 한국 전쟁 이후 자갈밭에 있었던 시장이기에 자갈밭과 곳, 장소를 나타내는 처(處)가 경상도 사투리로 발음하게 되어 치가 되어 자갈치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1950년대에는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와 국제시장 화재 등의 유독 화재사건이 잦았기에, 꼼장어구이집, 생선구이집 등의 화기를 사용하는 식당을 자갈치시장으로 이전시켰다. 당시 자갈치시장 뒷골목은 작부집이 즐비한 골목으로 유명했으나 1980년대 수산업 경기 침체와 함께 쇠락하였고, 그 자리에 양곱창집이 여럿 들어서면서 양곱창집 골목을 형성하였다. 양곱창 골목은 조업을 끝내고 돌아온 선원들과 인근의 시청, 법원 등 관공서 공무원들을.. 2024. 2. 21. 이전 1 ··· 5 6 7 8 9 10 11 ··· 37 다음